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 15는 시편 24와 함께 순례자들이 성전에 오르며 서로 주고받던 노래다. 시인은 마치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성전에 들어갈 조건을 제시하듯 운율에 맞추어 노래한다. 스타인버그(Milton Steinberg)는 유대 전통에서 구약성서의 내용과 교훈을 압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2세기 랍비 시믈라이에 따르면 토라에는 일 년의 날짜와 같은 365개의 금지 명령과 사람의 신체 부위에 해당하는 248개 긍정 명령, 모두 613 개의 계명이 주어졌다. 그러나 다윗은 11 개(시 15:1-5), 이사야는 6 개(사 33:14-16), [예레미야는 5개(렘 7:8-9)?] 미가는 3 개(미 6:8), 아모스는 2 개(암 5:4), 그리고 하박국은 하나로(합 2:4) 줄였다는 것이다. 

시 15에서 주목할 것은 모세의 교훈, 곧 토라 613 개의 계명을 다윗이 11 개로 축약하면서 내세운 전제조건이다. 곧 ‘주의 장막에 머물며 주의 성산에 살 사람은 누구인가’이다. 누구든 다음의 11 개의 계명을 실천해야 자격이 주어질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도 않는다고 확신한다(1,5절). 먼저 제시된 세 가지 조건은 전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① 정직하게 사는 사람, ② 공의를 펼치는 사람, ③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 위 세 항목은 보통 ‘진리를 행하는 자’로 통한다(시 26:3; 86:11; 왕상 2:4; 사 38:3). 주님의 장막과 성산에 머물 사람이라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란 뜻이다.

두 번째는 부정적 조건이 세 번 반복된다. ④ 험담하지 않는 사람, ⑤ 이웃에게 악행하지 않는 자, ⑥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다, 흔히 공동체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다. 세 항목은 사실 연쇄적이며 서로 맞물려 있다. 이웃의 허물을 들춰내는 사람은 또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악행을 일삼을 수 있다.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새번역>에서 흥미로운 것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처럼 ‘모함하다’(לגר)가 명사 ‘발’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험담이 순식간에 전파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셋 가운데 하나만 저질렀으니 그의 잘못이 경미하다고 위안이나 동정을 받을 수 없다. 유대인 속담에 험담은 살인보다 중대한 범죄다. 왜냐하면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그치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곧 험담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험담의 당사자다. 따라서 이웃의 험담을 캐내고 전파하며 비방하는 연쇄적인 관계를 밝혀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긍정적 조건이 이어진다. ⑦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⑧ 야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높이며, ⑨ 서원은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신의를 지킨다.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켜야할 덕목이다. 한글은 ‘멸시하다,’ ‘얕보다,’ ‘경멸하다’ 등으로 번역되었으나 뒤따르는 ‘존대하다’와 ‘변하지 않다’와 대조되는 적극적인 의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곧 ‘배격하다, 거절하다’(ףסמ)는 사전적 의미대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단호하게 ‘내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야웨를 두려워하는 사람과 자신의 서약에 대하여 존대하며 해로운 결과가 예측되더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주의 성산에 살려는 신앙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부정형과 긍정형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다. 

마지막 5절에는 두 가지 부정적 조건이 결론으로 나온다. ⑩ 이자를 받지 않으며, ⑪ 뇌물을 받지 않는다. 시 15가 제시하는 덕목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다. 생활밀착형 명령이다. 고대 이스라엘 신앙전통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사람이라면 고리대금이나 수뢰는 배척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이자를 받기 위한 대금업과 재판에서 뇌물은 금지사항이다(레 25:35-37; 출 23:8; 신 16:19).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돈을 빌려주는 경우는 이자 없이 담보를 통해서 가능하였고(신 24:6) 이방인들과 사업적 관계에서 대출이 허용되었다(신 23:19-20). 

순례자가 예루살렘에 당도하면 성전 입구에서 마치 교리문답처럼 누가 성전에 거할 수 있는지 일종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성전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주의 장막에 머무는 자에게는 엄청난 복과 특권이 주어진다. 첫째, 그들은 주님을 늘 찬미할 것이며(시 84:4), 둘째, 천사가 그들을 모든 길에서 지켜 안전하게 보호한다(시 91:11-12; 마 4:6). 유대 전통에서 시편 15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과 신앙을 노래한 찬사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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