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전대미문의 참사가 벌어졌다.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왔던 시민과 관광객이 좁은 골목에서 한꺼번에 뒤엉키며 159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의 기억은 아직 우리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유명을 달리한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지, 친구와 영원히 작별하리란 것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위험이 자신에게 닥칠 거란 걸 눈치라도 챘더라면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사건이 보도됐을 때 내 자식이 거기에 안 간 걸 안도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개중에는 왜 그런 곳에 놀러 가서 개죽음을 당했냐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죽음 당할 걸 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이나 그 가족은 피해자지 손가락질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사건이 터진 후 정치권이 연일 책임 공방을 벌였다. 야당의 공세에 윤석열 정부 들어 최대 위기에 봉착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치안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서 탄핵됐지만 수개월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고가 일어난 관할 용산구청장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국민과 외국인 등 159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는데 사고의 직접 책임이 없다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가 정상적인지 아닌지는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자식, 또는 친지, 친구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해밀턴호텔 골목 참사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 송이는 시간이 흐르자 쓰레기로 치워졌다.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설치했던 천막도 주변 상인들의 항의로 서울시의회 앞으로 옮겨졌다가 또다시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됐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두고 시작된 재판은 지금 1년째 표류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행정안전부, 참사 현장에서 지근거리에 있던 용산 대통령실까지 누구도 내 탓이오나서는 이가 없다. 직접적인 책임 유무를 떠나 도의적인 책임마저 지지 않으려는 공직자의 모습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재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1년 전과 후에 달리진 걸 찾기도 힘들다. 9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선원과 선장과 업체와 조합과 해경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했듯이, 지난여름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 홍수통제소와 청주시와 충북도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서로 책임을 미룬 것처럼 안전불감증에 책임 떠넘기기만 여전할 뿐이다.

달라졌다면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예년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는 점이다. 1주기 추모 행사를 앞둔 탓에 할로윈 대목을 노리던 호텔 유통업계도 조용하게 이날을 넘기려 하고 있다. 사회적 추모와 애도 분위기를 고려한 결정일 것이다.

문제는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을 유가족의 상처다. 마음껏 슬퍼하는 것조차 따가운 눈총을 받는 현실에서 이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국가의 안전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해도 모든 사고를 막을 순 없다. 그러나 국가라면 최소한 자식,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방치하는 일만은 해선 안 된다. 슬픔을 다독이기는커녕 숨기고 지우려 했던 걸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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