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헌철 목사.
서헌철 목사.

2023년 달력이 한 장 반이 남았다.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 맞이할 2024년의 계획을 세워 보려는데 머리가 멍해진다. 어떤 이들은 “때로는 멍때리는 산책, 침묵” 등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2023년은 종교계가 특히 교회의 정체성에 혼란한 모습을 보이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두드러진 한해가 아니었을까? 그 모든 현상이 교계 지도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데서 멍하니 있기가 왠지 불안하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무기력함이 엄습해 오는 듯하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왜 이렇게 조급해지는 것이지?

 물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라” 하지만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고 하지만 입으로 주문을 외우는 듯하여 진정성에 의문도 갖게 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욕망 등을 버리지 못해”라고 변명도 해 보지만, 그렇다고 성도 거룩한 백성 운운하면서 믿음의 자존감마저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등, 혼돈에 이르러 2024년의 계획이 눈앞에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무엇이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말이다. 더욱이 내년 4월 5일(식목일)에는 총선거가 있다고 하니 또 얼마나 속 뒤집어 지게 하는 말들이 들려올까? 특히 교계 지도자들의 평소 외치는 말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당연 ‘회개’일 터인바 과연 ‘회개’의 신앙을 사람들에게 보여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까? 평소에는 이것이 진실이고, 정의이고, 바른길이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신다고 외치지만 정작 말이나 행동에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없을까?

 ‘제임스 알레’(James Allen)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큰 달성을 이룬 뒤 잠깐 방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낙오자의 대열로 전락한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경제적 달성이건 지적, 정신적, 달성이건 모든 달성은 명확히 인도된 생각의 결과이며, 같은 법칙을 따르고 동일한 과정을 거쳐 출현합니다. 달성에 존재하는 저마다의 차이는 대상이 서로 다른 이유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전혀 희생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을 바란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기희생을 해야 합니다. 물론 큰 성공을 한다면 더 큰 자기희생을, 그보다 더 위대한 성공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하는 커다란 희생을 지불해야 합니다.'(출처 : 인생 연금술)

 특히 인간의 삶은 역사, 시대, 환경 등에 따라 그 생활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복음 선포나 설교나 이와 관계된 주장 등이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 것이라면 하나님의 본질적 뜻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사사로운 욕망에 의한 감정을 합리화 하면서 ‘진리’라고 설파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겠다는 거지 같은 마음으로 군림하는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성공이라 하실까? 필자는 말했다 “출세(出世)는 인생(人生)의 한 과정(過程)이며, 성공(成功)은 인생(人生)의 결론(結論)이다”

 2010년 11월 11일 ‘서울’에서 개최된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에 참가한, 세계 1위 식품회사 ‘네슬레의 피터 브라벡-레트마테’ 회장은 "성공의 특별한 비결은 없다. CEO란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CEO는 기업이 자기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라고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욕망보다는, “성육신(聖肉身)”하신 예수님의 목적이 우리의 삶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깊이 새기며 계획해 보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5,26)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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