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부모가 양육(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녀에게 접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녀와 손잡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주장하시고 간섭하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자녀의 주의(attention)를 끄는 일입니다. 그 일은 말이나 몸짓 또는 표정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부모와 자녀가 평소에 가장 교감이 잘되는 방법으로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인가 영향을 주려면, 먼저 영향을 주려는 내용보다 앞서 주의를 확보하여, 자녀가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부모가 자녀에게 주의를 끄는 데 성공한다면 부모의 양육(교육) 방법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부모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주의가 의식적인가, 무의식적인가에 대한 분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의식적 주의가 무의식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무의식적 주의가 의식적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말씀에 기쁨 없이 참여한 관중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중에 꼬투리를 잡아 올무에 얽어매려고 의식적인 주의를 기울였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진해서 무의식적인 주의로 예수님의 말씀 선포하는 곳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의식과 무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가르침에 자녀가 주의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의를 확보하기 위해서 첫째, 자녀의 흥미 또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마14:22~33), 용서 방법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마18:21), 재물 많은 청년의 영생에 관한 질문(마19:16), 구원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마19:25~30), 이혼에 대한 문제(막10:1~12)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흥미나 관심을 고려하여 주의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자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심으로 그들의 주의를 끄셨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심(마 8장, 9장, 17장),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마14:13~21), 사천 명을 먹이심(마15:32~39) 등이 있습니다. 셋째, 자녀에게 개념적 설명이 아닌, 비유적이고 회화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나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는 개념적 설명이 아닌, 친숙하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들로 비유적인 설명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거짓 선지자의 비유(마7:1527), 천국의 비유(마13:10~50; 마20:1~16; 마22:1~14), 열 처녀와 달란트 비유(25:1~30), 마지막 만찬(막14:22~26) 등이 있습니다. 넷째, 자녀에게 주의를 끄는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권위 있는 표현을 사용해서 주의를 끄셨습니다. 예를 들면, “들으라”, 다 들을지어다“, ”보라“, ”귀를 기울일지어다“등의 표현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마 23장)으셨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주의를 요하는 내용에 대해, ”이것은 중요해!“, ”잘 들어봐!“, ”이 부분을 집중해 봐!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억양을 활용하여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주의력 확보를 위한 방안을 살펴보면, 첫째, 자녀와 공감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부모와 자녀가 서로 공감하는 놀이나 관심 부분에 대해서는 자녀가 주의 집중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평소에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놀이를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부모와 자녀가 서로 친밀감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양육(교육)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친구처럼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면, 경직됨 없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됩니다. 자녀 양육(교육)에 있어서 이점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요구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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