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을

다시 가을입니다
긴 꼬리연이 공중에 연필그림을 그립니다
아름다워서 고맙습니다
우리의 복입니다

​가을엔 이별도 눈부십니다
연인들의 절통한 가슴앓이도
지금 세상에선 수려한 작품입니다
다시 만나라는 나의 축원도
이 가을엔 진심이 한도에 닿은 듯합니다
그간에 여러 번 가을이 왔었는데
또 가을이 수북하게 왔습니다
이래도 되는지요 빛 부시어 과분한 거 아닌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복입니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에 한 사람이 지구별을 떠나갔다. 비록 천국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지상에서의 이별은 마음이 아려오곤 한다. 김남조 시인은 언제나 주님 앞에 무릎 끓고 기도했던 작가이며 사람을 무척 사랑했다. 특히 한 세기 동안 오직 시에 대한 열정으로 19권의 시집과 10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우리 나라 질곡의 역사와 함께했고 시대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견디면서 감사와 사랑을 잃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 앞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였다. 문학적으로는 한국 시의 산맥이자 시의 어머니를 잃은 것이지만 그 작품은 영원히 심금을 울리고 있다.

시의 제목이「다시 가을」이다. 시의 첫 행도“다시 가을입니다”로 시작된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계절의 순환을 시의 처음부터 강조한다. 해마다 가을이 돌아오고 다시 가을이 떠나간다. 누구나 가을을 맞이하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다양하다. 시인의 눈에 잡힌 가을은공중에 연필그림”을 그리는 긴 꼬리연이다. 높고 푸른 하늘에 연 날리는 모습을 간간이 본다. 보는 사람마다 좋다, 아름답다, 멋지다 등 여러 감정을 느낄 것이다. 시인은 그런 감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이“아름다워서 고맙습니다”라고 감탄을 한다. 그러면서 바로 우리의 복입니다는 고백을 한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시인의 마음이 곡진하게 드러난다.

이런 믿음의 시선은 이별도 눈부시다는 관점으로 연결되고 연인들 간“절통한 가슴앓이”도수려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시인은 긴 평생 사는 동안 숱한 가을을 맞았을텐데

그 수북한 가을을“과분한 거 아닌지요”라고 묻는다. 시의 마지막 두 행 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나면서 결국 모든 것이“나의 복입니다”로 귀결된다. 고통도 감사로 받아들이면 축복이 된다고 한다. 감사는 가을보다 더 아름답고, 더 눈부시다는 걸 묵상하는 가을날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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