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교수
이 민 교수

미국의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때 남부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F. Davis, 1808~1889)가 리 장군에게 한 장교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리 장군은 그는 유능한 장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부관이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장군님을 험담하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리 장군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대통령께서는 그 장교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으신 것이지 나에 대한 그 장교의 의견을 묻지 않으셨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리더십(leadership)을 이렇게 설명했다. “리더는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게 리더의 유일한 정의다.”(The only definition of a leader is someone who has followers.) 덧붙여서, 그는 리더십의 기본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사람의 말을 들을 즐 알아야 한다. 넷째, 사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네 가지를 바탕으로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마키아벨리(N. Machiavelli, 1469~1527)군주론에서 리더의 자질에 대해 이렇게 설파한다. “군주가 명성을 얻는 것은 군주 자신의 자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측근의 훌륭한 조언에 의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군주 자신이 현명하지 않다면 좋은 조언도 수용되지 않는다. 군주의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려면 우선 측근을 보면 된다. 측근이 유능하고 성실하면 그 군주는 현명하다. 측근의 능력을 알아보고 성실하게 만드는 것은 군주 자신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측근이 무능하다면 유능한 군주가 못 된다. 사람을 볼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시대와 사람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시대를 읽을 줄 알고, 올바르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그 인재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볼 줄 안다는 것! 특히, 겉보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주()나라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태공망(太公望)은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현명해 보이는데 실은 소견이 좁고 어리석은 자가 있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선량해 보이는데 실은 부정을 일삼는 자가 있다. 조신한 듯 보이지만 실은 교만한 자가 있다. 마음이 고운 듯하지만 실은 성실하지 않은 자가 있다. 계획을 잘 세우나 결단력이 없는 자가 있다. 과감한 듯하면서 실은 실천력이 없는 자가 있다. 겉으로는 용기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겁 많은 자가 있다.” 이렇게 말한 태공망도 측근을 겉만 보고 판단하여 대세를 그르친 경험이 있었다.

예수님은 리더십의 달인이시며 복음적 리더십의 전형이시다. 마가복음 5장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는 상황과 맞물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나온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신다.(“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32,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38) 그리고 모든 사건과 기적의 결말은 오직 믿음에 있다.(“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36)

한때 경청의 붐이 일어났다. 경청(傾聽)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말을 귀기울여 주의깊게 들음이다. 한자어 경()기울 경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기울여야함을 의미한다, ()들을 청, 허락할 청으로 이 한자어는 신체 기관인 귀()와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 귀와 마음으로 듣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며 통찰이다. 핵심은 경청 그 자체가 아니라 무슨 말을 경청하느냐이다. 탐욕과 욕망의 말은 무시해야 한다. 진리가 아닌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아첨과 이간질의 소리는 듣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 이것이 예배의 본질이며 설교의 핵심이다.

구약의 솔로몬 왕이 구한 지혜의 본질은 바로 듣는 마음’(listening heart, understanding mind, 왕상 3:9)이다. 욥도 같은 신앙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경청통찰로 승화하는 것이다.

국가와 정당의 지도자가 왜 실패하는가? 그들에게 자신의 주장만 말하려는 욕심만 앞섰지 듣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대통령은 국민들의 눈물과 땀과 피를 닦아줄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무슨 보수가 필요하며 진보가 필요하단 말인가! 지도자는 국민의 마음을 듣고, 읽고, 보면서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곧 다가오는 선거철에 새겨야 할 시대의 복음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12;15)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