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결단하자

달력 마지막장을 남겨 놓고 있다. 교회력에 의하면 교회는 11월 달로 1년을 마감하고, 12월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이제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리고 탐욕과 소유욕에 메여 범죄 하는 손과 발을 끊고, 눈을 빼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 산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종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새 인간이 되어야 한다.

새 인간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1225일 성탄절, 아기 예수를 맞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대로 이끌고 있는 역사의 물줄기에 참여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은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해방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새로운 삶, 새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2024, 갑진년 새해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성경 마가복음 943-47절에 만일 네 손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만일 네 발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1)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손과 발은 내 의지의 도구에 불과하다. 손과 발을 자른다고 자신의 버릇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노름에 빠진 노름꾼이 손을 절단했다고 해서 노름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손이 없으면, 발가락에 화투를 걸고 노름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을 욕망에 길들여진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지배욕, 탐욕으로 가득차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의 의지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오늘날 인간의 의지는 헛된 욕망과 교만의 노예이다. 허위와 쾌락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죄의 노예가 우리의 의지이다. 이를 끊어내는 결단 없이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우상, 세상권력을 섬기는 자들만 우글거린다
돌로 만든 떡 먹고서는 새 인간 될 수 없다

종교적 차원에서의 의지의 자유

에라스무스는 휴먼니스트로서의 의지의 자유를 말했다. 하지만 루터는 투철한 신앙인으로서 의지의 노예성을 주장했다. 이를 두고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논쟁을 벌였다. 도덕이나, 교육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의지의 자유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새로운 탄생, 새 인간 존재의 변화, 아니 아기예수 탄생을 말하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의지의 자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루터가 신앙인으로서 의지의 노예성을 주장한 이유이다. 루터는 교황의 권세에 빌어 붙어 함께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군상들을 향해 악취가 풍긴다,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오늘 한국교회도 중세 타락한 교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 한국교회는 세상권력과 결탁,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분명 우상을 섬기는 일이다. 오늘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이념을 내세워 창립되는 단체들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도덕이나 교육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 의지의 자유를 말한다. 이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 각도 있는 소유욕과 지배욕, 탐욕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게 충성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들은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살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악을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새 인간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갈 수 없다. 복음도 없다. 강자들만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인간들은 힘 있는 자,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아래서 조아린다.

오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강대국들에 의해서 일어났다.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들을 보면, 국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들이 살해당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과 가족,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만 지키면 된다. 오늘 물질문명이 풍유한 현대사회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는 군상들만 보인다.

우리는 힘없는 자, 소외된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그냥 놔두고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해야 한다. 이들과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오늘날 사회는 자신의 부와 영화와 탐욕을 위해 아빠찬스, 엄마찬스를 써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는다. 지배욕과 출세욕, 소유욕으로 가득 차 시민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종교적 차원에서 의지의 자유

이렇게 출세하고, 부를 누리는 인간들은 직업을 대물림하고, 자신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한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진다는데 안타깝다. 이것은 신앙인이라고 해서 전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한지도 모른다. 오늘 교회들도 끼리끼리 모이는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들에게서 신앙인, 아니 종교적 차원에서의 의지의 자유를 찾아볼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인간들의 범죄행위는 각종 언론에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보도되고 있다. 범죄행위도 성폭력을 비롯한 사기, 헌금착취 등 가지가지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시키는 범죄자이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예수님은 결단하라고 한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향해 손과 발을 끊고, 새로운 세상,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고 한다.

교회는 구조악과 단절하지 않고서는 새 인간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결단하고,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살인자는 범죄 할 때 자유로이 선택해서 범죄 한 것이 아니다. 원한이나 분노, 욕망, 증오, 탐욕, 지배욕, 소유욕에 사로잡혀 범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소유욕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군상들의 원한과 증오에 의해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이는 실존적 강제에 굴복한 악행이다.

인간에게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해방시키거나, 변혁시킬 수 있는 의지의 자유가 없다. 모두가 자신에게 사로잡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해방될 수 없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자신에게서 벗어나 의지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인간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결단을 내리하고 했다. 손과 발이 범죄 하거든 잘라 버리라고 극단적인 말을 했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이 자신을 끊어버리라고 교육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 소유욕과 지배욕에 매달리는 인간, 자신을 내세우려고 힘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못살게 하는 악을 자기중심으로부터 끊어버리라고 한다. 또 이 말은 자신과 가족, 자기와 관련된 집단의 이익과 소유욕, 지배욕, 탐욕을 위해 사는 자신에게서 떠나라는 말과 같다.

한마디로 결단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는 사탄의 유혹에 대해서 단호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는 말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 대부분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이웃나라의 백성이 전쟁으로 인해 살해당해도,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가난한 목사와 전도사, 신학생 6000여명이 신천지교회 말씀교류에 참여해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태가 됐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

오히려 골치 아픈 인간들이 떠났다고 박수를 친다.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물질적인 존재로 전락한 결과이다. 이기적인 자기 노예가 되어 버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은 권세와 명예, 돈은 돌로 만든 떡이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 쑥떡을 먹고 돌 가슴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웃교회가 신종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해 문을 닫아도, 교인들이 신천지를 비롯한 이웃종교로 넘어가도, 전쟁으로 수많은 양민들이 도륙을 당해도 돌 가슴이 되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 교회가 됐다. 인정공동체는 무너졌고,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이웃을 사랑하기에는, 너와 나, 그리고 그의 풍성한 삶을 약속받기에는 모두의 가슴이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굳어져 버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다.

모두가 나와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일한다. 이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 나머지 하늘의 보화를 땅에 묻어둔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 전쟁의 참화 속에서 언제 죽을 모르는 힘없는 자,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렇다보니 오늘날 사회나, 교회는 끼리끼리 모이는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예수님은 권세를 잡은 자들과 함께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 소유욕과 쾌락에의 욕구에 내 맡겨진 인간, 자기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을 향해 손과 발을 잘라내는 결단, 눈을 빼는 결단을 요구한다. 손은 내 의지를 직접 실현하는 수단이다. 손은 소유욕을 충족시키며 부정한 재물을 움켜쥐고 지배욕을 충족시키려고 폭력을 휘두른다. 내 뜻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소유욕과 지배욕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손을 절단하라고 교육한다.

범죄 하는 발과 손을 끊고 눈을 빼자

또한 예수님은 인간이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빠져드는 유혹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발을 끊으라고 한다. 또 보이는 대로 감각적 욕심에 빠져 드는 인간을 향해 눈을 빼라고 한다. 한마디로 주체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외부적인 겉모습을 보지 말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악마의 늪에 빠진 손과 발을 절단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범죄 하는 손과 발을 끊고, 눈을 빼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 이르렀다. 세상권력과 단절하고, 돈과 이기적인 탐욕에 의지하지 않고 산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여기에는 항상 산고의 고통이 뒤 따른다. 또 아프고 고독하다. 그것은 수동적인 인간에서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며, 결단이다. 순수한 존재의 용기이며,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고난의 여정이다.

우리 모두가 손과 발을 끊고 눈을 빼는 확신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헌데 모두가 기회나 사정, 돌아올 이득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모두 죄와 죽음, 쾌락과 욕망에 둘러싸여 예수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일부 목회자는 교인들이야 어찌되든 자신의 탐욕과 쾌락을 위해서 일하기에 바쁘다. 윤리적인 타락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에 생명을 걸고,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타인의 삶까지도 파멸로 이끈다. 그렇다보니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서, 우리를 부르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교회는 세상과 멀어지고, 있는 교인들마저도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참사랑, 복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 대신 돈의 흐름의 물줄기를 쫓아다니기에 군상들만 보인다.

이제 교회나, 연합단체는 공동체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교주와 단체장 한사람의 비위를 맞춰주는 교회, 단체로 변질되었다. 모두 여기에서 멈추지 않으면, 하늘나라의 보화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예수님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힘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그대로 놔두고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위선의 너울을 용기 있게 벗어 던져라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며, 하나님의 공의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 모두가 물질적인 삶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참사랑을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실현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 미래가 열린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굳어버린 마음을 깨트릴 때, 위선의 너울을 용기 있게 벗어버릴 때,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지가 열린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중심을 발견하자.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 수 있다. 범죄 하는 손과 발을 끊고, 탐욕의 눈을 뺌으로써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이 열린다. 이제라도 우리는 폭력적인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힘 있는 사이비 교주와 힘 있는 권세가진 자들과 단절해야 한다. 대신 전쟁의 고통 속에서 언제 죽을 모르는 이웃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이럴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는 탐욕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범죄 하는 손과 발을 끊고, 눈을 빼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살 것인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재물에 의지하고, 돌로 만든 떡을 먹는 인간들은 손과 발, 눈으로 감각적인 쾌락을 즐기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결과를 다져다가 줄 것이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쾌락과 탐욕은 결국 세상을 어지럽히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참된 하나님나라를 방해한다. 이제라도 이기적인 안락한 삶에 빠져 있는 손과 발을 절단하고, 눈을 뺌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나라, 하나님나라가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자.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 모두는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신년새해 2024년을 대망하며, 전쟁과 기아가 없는 세계평화, 힘없는 자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관념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갈망하며,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를 예수님의 평화, 샬롬이 인류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간청 드려야 한다.

힘없는 자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그대로 놓아두고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인류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기대어 더불어 살아가는 그날을 소망하며, 대망해 보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