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기다릴 줄을 모른다. 빨리빨리 외치다가 큰 일을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고 목격한다. 특히 한국 사람처럼 급한 사람은 없다. 외국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한마디로 빨리빨리라고 연발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조급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남녀간에 사랑을 나누면서 상대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서 급하게 달려든다. 그러다가 낭패를 본다.

아이의 손에 두 개의 사과를 들려주었다. 이를 본 엄마가 아이에게 사과 하나를 달라고 한다.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과 하나를 베어 먹는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표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개의 사과도 한입 베어 물어버린다. 엄마는 아이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욕심 많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손에 가지고 있던 사과 하나를 내밀면서 엄마 이것이 더 맛있어요라고 말한다.

이 아이는 욕심쟁이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만약 엄마가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이 못된 년아 왜 이렇게 혼자만 아니. 내가 너를 이기적으로 키우지 않았는데라며, 혼을 냈다면, 아이는 오히려 엄마를 멀리하고, 엄마를 혼만 내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아 갈 것이다. 아이의 행동에 기다리는 엄마, 기다리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는 무조건적인 사람, 아가페로 맺어진 관계이다.

아픔과 상처를 주지 않고, 엄마의 기다리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일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 벼랑 끝을 헤매셨다.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그대로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 오늘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어리석은 사랑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어리석은 속에는 참 소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기쁨에 넘친 잔치를 벌인다.

오늘 한국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비유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교인들이 빠져 나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빠져나간 교인을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오히려 골치 아픈 교인 나갔다면서, 환영한다. 이는 분명 성경에서 이탈한 행동이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사랑 속에는 계산할 수 없는 참사랑이 그대로 묻어있다. 이런 사랑이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이런 사랑을 잃어버리면서, 오늘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다.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상, 미래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지 못한 결과, 세상사람들은 교회를 찾지 않는다. 있는 교인마저 잃어버린다. 섣부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면, 아픔과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조금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천만금 같은 당신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사에 보면, 송계아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에 대비해서 자신이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닌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 했다. 백만금 밖에 안 되는 그 집값을 천백만금이나 주고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백만매택이요/천만매린이라,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하였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되기 위한 프리미엄으로 지불한 것입니다

좋은 이웃과 함께 하려고 집값의 10배를 더 지불한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한 일로 여겨졌다. 백만금으로 집값을 주고, 천만금을 주고 좋은 이웃 프리미엄으로 지불하였다는 송계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좋은 이웃, 좋은 친구인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인천 소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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