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노력 없는 성공은 없다, 노력 없는 운도 없다. ‘이란 글자를 거꾸로 읽으면 이 된다. 공을 들여야만 성공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이 따라 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성공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누구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져 존재론적으로 살아간다, 모두가 돈을 좋아하고, 숭상한다.

존재론적인 인간은 지배자의 관점, 상하의 관점, 우열의 관점에서 너와 그를 바라본다.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이며, 양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관계론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슬픔과 기쁨의 근원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모두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상대를 지배하려고만 달려든다.

그렇다 보니 사회는 삭막하고, 인간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집단을 구성했다. 모두가 인류대학에 들어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가 법대·의대에 들어가려고만 한다. 이를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끼리끼리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그곳에서 살아간다. 나를 위해서 인간관계를 갖는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우물안 개구리가 됐다.

이런 존재론적인 인간은 이웃의 아픔을 모른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잘되면 된다. 이들에게는 너와 그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충성한다. 너의 아픔을 모른다. 이들의 관계는 끼리끼리의 관계이며, 여기에는 인정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인간은 너와 나, 그와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진다. 그래서 서울역 앞을 배회하는 노숙인들이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성숙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사는 인간들은 지배자의 관념 속에서 줄 세우기 하는 일에 만연되어 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너를 지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들을 두고 인간성이 상실되었다고 말한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지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들은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눈다.

그렇다 인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 넘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에게는 무엇을 가졌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친구로, 이웃으로 생각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관계론적인 인간으로 변화되어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요즘 교회내의 일부 군상들을 보면, 끼리끼리 어울리며, 모임을 갖는다. 특히 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돈이 있는 곳에 몰려든다. 선거철만 되면, 돈을 좆아 다니는 군상들을 보면, 저들이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예수님은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보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힘없는 자, 우는 자,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해당하는 자,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일일 노동자들은 예수님에게로부터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사람은 돈과 지위가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나를 인정해 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너와 그가 있어서 행복한 것이다. 이들의 삶은 항상 아름답다.

이들은 나와 가족을 위해서 충성하지 않는다. 항상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한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공을 들리다가 보면, 아름다운 세상,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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