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교수
이 민 교수

농구 하다 보면 슛 쏴도 안 들어갈 때가 있다. 근데 그 순간 노력에 따라 다시 기회가 생긴다. 그게 뭐꼬? ‘리바운드’(rebound). 슛을 수십 번 쏴서 안 들어가면 그만큼 수십 번 리바운드 기회가 오는 기다. 선수 생활 실패하고 모교에 코치로 와서 제대로 이기는 방법도 모르면서 느그들을 내몰았다. ? 겁났으니까. 그래서 실패를 했다. 근데 그건, ‘진짜 실패가 아니더라. 결국 지금 전국대회 결승전, 선수대기실에 느그랑 같이 있을 수 있던 건 그 가짜 실패덕분이었다. 어떻게든 리바운드를 잡아낸 거지. 느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겁먹지 말고 달려들어서 다시 잡아내라. 다시 던져 보라고! 명심해라.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20234월에 개봉된 영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에서의 강양현(안재홍 분) 코치의 대사 일부다. ‘리바운드’(rebound)는 슈팅한 공이 골인되지 아니하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고 튀어 나오는 농구 용어다. 리바운드는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써 내려간 8일간의 기적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양현은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의 첫 경기 상대인 고교농구 최강자인 용산고에 몰수패를 당한다. 급기야 농구부 해체까지 논의되는 상태에서 양현은 MVP까지 올랐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실력자를 모아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자신이 꼼꼼히 적었던 경기일지에서 리바운드: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려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 것.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용기를 얻어 선수들을 독려한다.

리바운드는 농구 경기의 승부를 넘어서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그것은 단순히 농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적 시각에서 보면 그 과정은 다분히 복음적이며 종말론적이다. 선수 혼자 리바운드를 잡아봤자 승리할 수 없다. 실수하거나 실패한 나 자신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리바운드로 잡은 기회를 서로가 서로에게 밀어주어야 다같이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기며 실수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 이것이 가짜 실패진정한 성공으로 바꾸는 비결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생의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인 종착점을 알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주는 복음이다.

마태복음 2631~35절에는 베드로의 삼중 부인’(three-fold denial)이 나타난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결심하고 장담하더니 결국은 부인맹세저주의 점층적 부인을 완성한다.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라고 맹세한 베드로는 3년을 배웠는데도 스승의 깊은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과 자기 경험에 집착하는 동안은 진리가 절대 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을 몰랐기 때문이다.

실패관리와 성공관리(이준수 엮음), 박영사, 2021)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이준수 부교수가 실패의 유익함과 성공의 해로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목적으로 저술한 것이다. 돈을 벌면 돈을, 명예를 얻으면 명예를 관리해야 한다. 성공에 취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이제부터 반석이다. 그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천국 열쇠를 주노라.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라는 엄청난 칭찬을 하신다. 베드로는 그 소리에 우쭐해져서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하리라는 소리를 흘려들었다. 칭찬 받을 때 자신(self)을 잃어버렸다.

성공할 때 자기를 잃어버리기 쉽다. 건강할 때와 돈 벌었을 때 교만해진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부와 명예, 지위와 권세, 건강과 장수는 복이면서 동시에 함정이며 시험이고 위험 신호이다. 차라리 병들었으면 좋았을 걸 건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하고야 만다. 마찬가지로 비난과 모욕을 당할 때, 병들 때, 고난을 당할 때, 사고를 당할 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성공은 자랑할 것이 못되며 실패는 저장할 것이 못된다. 성공과 실패는 관리 대상이다. 과거의 작은 성공이 미래의 큰 성공을 망치는 법이다.

베드로의 결정적 실패는 기도가 없었다는 데에 있다. 그에게는 결심은 있었지만 기도가 없었다. 장담했지만 기도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베드로와 제자들은 세 번이나 깨우는데도 잠만 잤다. 기도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기도 없는 결심은 허상이며 허무만 낳는다. 기도 없는 결심은 내가 나를 믿는인본주의다. 기도 없는 장담은 만용이다. 기도를 통해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며 내 자신을 알게 된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너무 바빠서 하루에 3시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으며 D. L. 무디(D. L. Moody, 1837~1899)너무 바빠서 기도한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하여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며 궁극적 종말을 알게 된다.

미국의 유명한 잡지 포춘에 자주 등장하는 통계가 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70%가 약점을 가졌다. 그들은 실천적 용기와 인내가 부족하다. 95%는 말만 하고 5%만 행동에 옮긴다.” 많은 사람이 말만 하고 행동에 약하다. 그래서 바보는 늘 결심만 하다가 일을 그르친다. 베드로가 그랬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실패를 성공으로 바꿨을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그는 어부로 돌아가서 그물질 할 때 다시 스승의 음성을 듣고 사랑의 응답을 주고받은 사건(21)성공의 디딤돌이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3)성공의 도약대였다. 여기에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 허세와 결기만 가득했던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나서야 진정한 사도로 거듭났으며 결국은 순교로 성공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고백이 중생의 리바운드 기회였으며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이 또 한 번의 리바운드였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방법을 찾고 실패한 사람은 구실만을 찾기 마련이다.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