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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종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이다. 각 종교에는 국민들이 존경할만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은 부족해도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기대와 때로는 존경의 마음을 통하여 비워진 마음들을 채우게 된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의 삶과 행동, 언사, 그리고 죽음까지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최근 불행하게도 각 종교의 성직자 이름을 가진 이들의 행위가 국민들에게 실망과 놀라움을 안겨 주어 충격이다.

기독교의 목사라는 사람은 대통령 부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선물을 주는 것을 모두 몰래카메라로 찍어, 이를 언론에 넘겨 보도하게 하였다. 성직자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첨단화된 몰래카메라를 대통령 가족에게 접근하여 망신주려는 것까지 기획하고, 이를 일부 언론인들과 짜고서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성직자가 어떤 이념과 사상에 얽매여, 의도되고 연출된 방법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도 그렇지만, 그 전에 그가 발언한 내용들을 보면 그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억압받고 인권 탄압을 받는 주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북한 당국을 두둔하였다. 교회의 성직자로, 영적인 지도자로 보기에는 한참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천주교의 모 신부는 여성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가서 ‘0 0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는 발언을 하므로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 이런 표현들이 성직자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인지 의문스럽다.

천주교는 성직자가 되려면 서품(敍品)을 받아야 한다. 즉 성별(聖別)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선출하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려는 현 대통령을 괴물이라고 표현하고, 정치 현장에서는 성희롱 발언까지 해도 되는 것인가?

그런가 하면 불교의 큰 지도자라는 분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러한 죽음의 행위가 그 종교에서는 깨달음으로 인정하는지 몰라도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직자라고 모두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또 종교적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 삶과 죽음이 고결하고, 그 언행이 단정하고, 생명의 고귀함을 전하고 보여주는 것이 종교지도자로서, 혹은 성직자로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는 말씀이 있다. 종교지도자들은 살고 말하고 행동하고 죽는 것까지 모두 국민들에게 귀감(龜鑑)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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