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하 목사.
문병하 목사.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6:6)

어떤 사람이 약속시간에 늦어 과속을 하며 차를 몰고 있었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앞에 단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 왔다. 깜짝 놀라 재빠르게 속도를 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속 감지 카메라가 찰칵하며 촬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속도를 기준이하로 낮췄는데 카메라에 왜 찍혔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호기심 많은 이 사람은 다시 돌아가 속도를 낮춘 다음, 그 앞을 다시 지나갔다. 그런데 단속카메라에 자신의 차가 또 찰칵찍히는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이번에는 속도를 최대한 낮춘 다음, 그 앞을 다시 지나갔다. 그랬더니 또 찰칵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이 사람에게 고지서 석장이 날아 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전벨트 미착용

저마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준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때로 비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너는 속도를 생각했지만 나의 기준은 안전벨트였다라고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은 율법을 중요시하고 제사를 중요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12;7)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정죄하고 고발할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 안에 자꾸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고발하는 일이 더해 가고 있다면 우리가 점점 사랑은 없고 율법만 앞세우는 바리새인과 같은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자비가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비가 인간의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울타리입니다.

그러면 제사는 무엇입니까? 그 울타리를 잠시 벗어난 사람들이 다시 그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용서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울타리에 율법이라는 감시 카메라를 달아놓고 나간 사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감시하는 자들끼리 모여 나머지 사람들을 피감시자 그룹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또한 제 멋대로 별도 울타리를 만들어 감옥 같은 캠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비에 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에 흠뻑 젖는 것이야말로 구원받은 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흔히 우리가 성령의 단비라고 표현하는 것이 다름 아닌 자비의 빗줄기입니다. 굵은 빗줄기 아래에는 잠시만 서 있어도 온 몸이 흠뻑 젖습니다. 또 폭포수 물줄기 아래에 서 있어본 사람은 그 자리에 서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그 폭포수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비가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합니다.

주님! 이 순간을 잘 견디고 이겨내게 하옵소서/배신과 따돌림을 당했어도/비난과 원망을 하지 말게 하시고/이 땅에서 주님이 당하셨던 일을 생각하며/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불안한 마음과 불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가치 없는 일로 인하여 마음 상하지 않게 하소서/헛된 욕망과 욕심에 집착하거나/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오직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게 하소서/나이가 들수록 더 부드러워지고/연륜이 쌓일수록 더 넉넉해지며/세월이 갈수록 더 여유 있게 하옵소서/살아갈 삶이 근심 걱정이 아닌/기쁨을 만들어가는 날이 되게 하소서

덕정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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