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목사.
김 창 주 목사.

시편 81은 이집트 탈출과 광야의 구원 서사에 율법 수여라는 역사적 경험을 버무린 제의적 설교에 찬양이 포함되어 있다. 시편 50, 81, 95 등은 가을 축제에서 불렸던 노래며 부분적으로 유사점도 포함된다. 크게 찬양의 근거(1-5b)와 사제의 권유(5c-16절) 두 단락으로 나뉘는 중심에 5절이 들어있다. 여기에 두 가지 점을 풀어야 한다. 먼저 요셉(ףסוי)의 일반적인 표기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본문은 ‘여호셉’(ףסוהי)으로 구약에는 단 한 차례(hapax legomenon) 나오며 야웨에 대한 요셉의 신실성을 강조하는 후대의 표현이다. 학자들 중 ‘여호셉’을 북왕국 전승으로 간주하고 아삽의 시(시 73-83)처럼 에브라임 계열의 작품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70인역>은 5절의 주어를 하나님 대신 ‘여호셉’으로 읽는다. NAB, NEB, JB, JKV 등 일부 번역 성서가 동조한다.

두 번째는 ‘내가 알지 못한 말씀’이다. 사파(שׂפה)는 ‘입술’이나 ‘연설’이다(창 11:1). 따라서 히브리 노예들을 학대하던 감독관들의 말, 곧 이집트어로 이해할 수도 있다(시 114:1). 그러나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7절)과 시내산 계시를 암시하는 구절(9-10절)로 미루어 야웨의 말씀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앞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율례와 하나님의 규례’ 또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말씀(4절)과 더불어 시내산의 신현현 및 율법 수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출 19-20장). 시인의 노래에 역사가 순차적으로 묘사되지 않기에 일어난 혼선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야웨의 말씀을 비로소 듣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계시와 그 결과에 대하여 배우지 못한 상태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청종하지 않음을 지적하며(11-12절) 시내산 계시를 거듭 상기시킨다(5, 7, 9-10절). 특히 다음 인용 구절을 보라.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개역개정>
나의 백성이스라엘이 내 말을 듣기만 했어도, 내가 가라는 길로 가기만 했어도 <새번역>

1956년 이스라엘 우표(시 81:3)
1956년 이스라엘 우표(시 81:3)

<개역개정>은 명령으로 옮겼지만 본래는 가정법이다. <새번역>은 원문을 살렸다.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내 말을 듣기만 했어도, 내가 가라는 길로 가기만 했어도.”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들의 외면과 불순종과 완악한 행위는 계속되었다. 야웨의 신적 비애감이 묻어나는 위의 인용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이 묻어난다. 특히 십계명의 서문, 곧 본문의 10절에서 보듯 야웨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이스라엘에 청종을 원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시인은 초하루와 보름과 명절에 지켜야 할 율례와 규례로 제시하면서(3-4절) 풍성한 결실을 약속한다(16절). 기름진 밀과 반석의 꿀은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은 은유법이다(출 3:8; 13:5; 33:3). 주로 출애굽과 관련된 약속이며 풍요의 공간을 상징한다(레 20:24; 민 13:27; 16:14; 신 6:3; 26:9; 31:30; 수 5:6; 렘 11:5; 32:32; 겔 20:6, 15).

우리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1절).

시편 81의 기쁜 노래와 즐거운 찬양은 이집트의 구원과 시내산의 율법에 근거한다. 야웨의 말씀을 듣고(5, 8, 13절) 초하루와 보름과 명절에 함께 지켜야 할 율례와 규례다(3-4절). 이스라엘은 규례를 따르고 ‘알지 못하던 교훈’을 지키는 것은, 곧 ‘주님을 닮고 말씀을 담아’ 사는 일이다. 야웨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믿음의 올곧은 길이다. 그 결과 ‘기름진 밀’과 ‘반석의 꿀’을 얻게 된다. 가을에 수확한 풍요로운 결실을 감사하며 초막절에 낭송하기에 적절하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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