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택 목사
김 정 택 목사

여기서 혼란스러운 또 다른 문제는 아브라함이 들어갔던 땅인 ‘가나안 땅’에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신학자와 교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지시한 땅’이 ‘가나안 땅’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목적지가 아님을 신구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대표로 신약에서 행 7:5절을 보면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않으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라며 가나안 땅이 유업의 목적지가 아님을 말씀하고 있고, 또한 히 11:9절을 보면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한 장막에 거하였다는 것이지만,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라며 아직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들어갔던 ‘가나안 땅’이 약속한 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가나안 땅’이 아리라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이고, 이 땅을 유업으로 주기 위하여 남겨 놓았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인가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로 안다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집단들의 거짓을 발견할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거한다는 것으로 창 22: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는 ‘네 씨’가 들어간다는 것이고, ‘씨’가 되어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그 땅에 심겨지게 되고, 그 결과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는 곳’(사 25:8)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용을 죽여 아무도 상함이 없는 곳이 되게 한다는 것이고(사 27:1), 그곳은 ‘야곱의 씨’가 심겨져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울 것을 말씀하고 있다(사 27:6). 즉 ‘야곱의 씨’가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이사야 35장과 같이 사막에 백합화가 피고, 소경이 눈이 밝게 되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며 저는 자는 사슴과 같이 뛰고, 벙어리는 노래하고, 광야에는 샘이, 사막에는 시내가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은 사나운 짐승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만 존재하고 슬픔과 탄식은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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