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천을 배경으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갓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와 입체적 해설이 담긴 운보(雲甫) 김기창(1914~2001) 화백 성화집 예수의 생애(쿰란출판사)가 화제다.

예수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 중 수태고지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아기 예수 이집트로 피난’, ‘헤롯왕의 아이들 학살’, ‘사마리아의 여인’, ‘병자를 고치시다’, ‘오천 명을 먹이시다’,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마리아, 예수의 발을 씻다’, ‘최후의 만찬’, ‘수난당하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부활’, ‘막달라 마리아와 만나다’, ‘승천에 이르기 까지 30여개의 주요 장면을 그린 연작 성화를 한데 모았다.

한국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김 화백의 그림 하나하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사랑의 서정과 사유의 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붓 하나로 단순히 그려 내려간 것이 아닌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상념의 바다에 영혼의 닻을 내리고 그림을 건져 올렸다.

어릴 적 앓았던 장티푸스로 인해 청력을 잃고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림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얻게 됐다. 그러기에 글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김 화백의 성화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김 화백의 그림은 낯설음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곱게 댕기를 내리고 물레질을 하는 마리아와 그에게 찾아온 선녀, 갓을 쓰신 예수님과 한복을 입은 백성들, 예수님께서 나아온 색동옷 입은 어린아이들, 우리나라 산천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자라시고, 세례 받으시고, 가르치시고, 치료하시고, 마침내 겟세마네 기도를 거쳐 십자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기까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그만의 독창적인 구성과 대담하고 힘 있는 필치로 유려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천사 가브리엘 대신 색동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댕기 머리에 한복을 입은 마리아를 찾아오고, 양치는 목동 대신 밥상을 든 아낙네들이 아기 예수를 낳은 요셉과 마리아를 찾아온다. 붉은 관복을 입은 동방박사들과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청마루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독자들은 우리나라의 산천 풍경과 한복을 입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신선한 감동을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친근한 분으로 오시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운보 김기창 화백.
운보 김기창 화백.

한편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13년 서울 출생으로 19218세에 숭동보통학교(인사동)에 입학해 등교 첫날 열린 대운동회 때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인한 후천성 청각장애을 얻었다. 17세에 숭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이당 화백 문하에서 미술 수업을 시작했다.

김 화백은 수조(水鳥)로 제11회 선전 입선, 여일(麗日) 19회 선전 특선, 4회 특성으로 선전 규정에 의해 추천작가가 됐다. 6.25동란이 발발하자 아내 박래현의 고향인 군산으로 피난을 가 있던 중, 친분이 있던 선교사의 권유를 받고 예수의 생애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이후 195239세에 예수의 생애제작에 착수해 1년 동안 29점의 예수의 일대기를 완성했으며, 1953년에 독일 선교사의 제의로 부활을 추가로 제작해 예수의 생애30점을 완성하게 됐다.

아울러 5.16민족상(사회부문) 수상, 서울시문화상(미술 부문) 수상, MBCTV 시청자 미술 부문 인지도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 화가로 선정, 한국예술평론가협회에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됐으며,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한바 있으며, 200188123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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