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민들은 김정은 한사람을 위해서 희생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를 강하게 비판해 왔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 이는 독재자, 공산주의자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북한을 비판하던 한국교회 안에서도, 세습은 물론이고, 욕심 많은 몇몇 목사를 위해서 충성하는 단체와 군상들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한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북한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들보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한국교회 안에서 고착화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욕심 많은 몇 명의 목사가 독차지하려고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디를 가나 부자교회, 부자교단의 몇몇 목사만 보인다. 이들의 하나의 한국교회, 대사회운동에 있어서의 희생과 공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한마디로 정치인 못지않다. 이들이 말하는 격식은 작은 교회 목사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모든 단체와 교단, 교회가 순서를 짜는데 있어서도, 이들의 시간과 원하는 장소에 맞추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부자교회, 부자교단에 걸 맞는 장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주변에 사람이 몰려드는 이유는 이들이 가진 위상이 아니다. 그들의 주머니와 교회에서 나오는 돈에 눈이 먼 결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욕심 많은 인간을 향해 범죄 하는 발과 손을 끊고, 유혹에 넘어가는 눈을 빼는 결단을 내리라고 했다.

몇몇 목사의 관계는 인간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대부분 돈과 연결된 관계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보니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특정인 목사가 해설한 책에 대해 협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느 모 단체는 보고서를 내면서, 특정인 목사를 홍보하는 보고서를 낼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는 특정 인물을 우상화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보고서를 받는 순간 부자교회 목사의 위력을 순간에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보고서대로라면, 이 단체에 속한 대다수의 회원들은 부자교회 목사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부자교회, 부자교단의 몇몇 목사를 사이비교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맘몬을 좋아하는 군상들에 의해 부자교회와 교단의 몇몇 목사를 집단화시켜 교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신학자들은 집단화된 단체, 개인 한사람을 위해서 충성하는 단체와 교회는 이단사이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개인 한사람을 위해서 충성하는 집단화를 통해 이단이 만들어졌고, 사이비가 만들어졌다. 이는 분명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욕심 많은 몇몇 목사가 받으려는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한국교회는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모이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연합단체의 면면을 살펴보면 극명해진다. 심지어 몇몇 부자교회의 목사와 부자교단의 지도자는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범죄하고서도 그것을 덮기 위해 교회의 헌금을 동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밑에서 일하는 실무목사가 해결사로 나서는 일은 다반사가 됐다. 이러한 구조 악을 끊지 않고서는 한국교회가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이들의 한국교회를 위한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내놓은 돈의 위력 앞에 목사들이 모이고, 이를 바탕으로 그나마 하나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왼손이 한 일에 대해서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겸손 하라고 했다. 이들이 자신의 명예와 탐욕을 위해서 사용하는 재정 모두는 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부자교단, 부자교회 몇몇 목사들이 자신의 아성을 쌓는 사이, 성탄의 계절 아기예수의 탄생과 함께 희망을 가져야 할 작은 교회 목회자와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절망으로 다가온다. 성탄의 계절, 연말연시를 맞은 그리스도인 모두는 팔과 손을 끊고 눈을 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마음속에 내재된 욕심을 버리고, 정화된 마음으로 메시야를 기다려야 한다. 메시야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메시아는 힘없고 보잘 것 없는 목회자와 교인,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며, 인류 속에서 더불어 사는 숲을 가꾸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하는 소망을 작게나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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