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 인류 역사의 고통 결부

우리는 앞서 <성탄절 특집()>에서 살펴 본대로 힘없는 자,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의 위협에 노출돼 살해당하는 이웃, 아프리카 등 남반구의 굶어죽는 이웃,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 교회출석을 꺼려하는 노숙자, 빈민들을 그대로 두고서 2023년 성탄절,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를 맞을 수 없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고난의 인류역사와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헤롯이 예수님 탄생 당시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아래 유아 학살 사건이 말해주고 있다. 이 사건은 메시아 탄생의 역사적 갈등과 비극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아우구스토 로마 황제는 칼과 창으로 로마의 평화를 이루었고, 로마제국을 형성했다. 이 평화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끊고 창과 칼로 이룬 평화이며, 압제와 수탈을 강요하는 평화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 넘치는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는데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가 준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의 고통, 사무친 한과 결부되어 있다. 그의 탄생은 불의한 통치자를 거부하고, 억압과 수탈에 대한 항거이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기쁜 소식이다. 그의 탄생은 화려하고, 요란한 게 아니라, 초라하고 조용하며 박해를 받았다.

이렇듯 복음의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힘은 하나님의 참사랑, 예수님의 어리석은 사랑, 복음에서 나온다. 원한과 증오, 미움의 힘은 결국 불행을 우리에게 가져다가 준다. 잠시 승리의 쾌감을 느낄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나라와 공동체를 파멸로 이끈다. 오늘날 자유를 강조하는 지도자들에게서, 인간존중의 정신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 법과 정의, 상식을 내세워 국민과 교인 위에 군림하며, 법과 제도를 만들어 그곳에 옭아 멘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자유를 누리며, 평화의 사도로 포장하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이들의 자유는 부자, 성공한자. 대기업 회장 등 기득권자의 자유이다. 오늘날 사회는 그들만의 세상이며, 그들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됐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고난당하는 이웃을 망각한 이들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공동체에도 참여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장애인, 노동자. 노숙인,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살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노동자, 굶어죽은 이웃들은 보이지 않는다.

성탄절 새벽 맑은 눈으로 아기 예수를 만나자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자

메시아사상을 상실한 불의한 자

노동을 천시하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군상들은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이는 모두가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된 결과이다. 오늘 세계정세를 보면 우울한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망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교회는 복음, 생명을 상실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성탄절,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성경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동정녀 탄생’, ‘예수라는 이름’, ‘임마누엘등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성탄의 계절, 우리는 범죄 하는 발과 팔을 절단하고, 세상의 거짓과 불의를 유혹시키는 눈을 빼는 결단을 내렸는가(?) 눈을 빼고, 팔과 다리를 절단하는 결단을 내렸다면,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25일 성탄절,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메시아와 함께 신년 새해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 미래로 나가야 한다. 헌데 오늘 교회는 과거에 머물러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보수보수를 외치다가 보수주의에 떨어지고 말았다. 교인들은 미래가 없는 교회를 떠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인용, 새로운 세상을 말하는 신천지 등에 미혹되고 있다는 사실. 요즘 요한계시록 세미나에 교인들이 몰려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터부시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누가 범죄 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보면서, 교회에 나가겠는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신학생 등 64백여명이 신천지예수증거장막성전 제10차 수료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에 대해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보라.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회개). 억압과 수탈의 체제 속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인간들에게는 절대로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가 열리지 않는다.

불의와 거짓의 토대 위에 메시아(?)

본능과 습관의 굴레에서 소망 없는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불의와 거짓의 토대 위에서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군상들은 메시아를 맞을 자격조차 상실해 버렸다.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혼란만을 안겨 주겠다는 군상들은 적그리스도가 아닌지. 교회지도자, 정치지도자들은 오늘의 잘못을 털어버리고 메시야를 맞아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분명 불의와 거짓의 토대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메시아사상이 나올 수 없다.

억압과 수탈의 체제서 해방돼, 닫쳐진 사회, 닫쳐진 역사를 연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밖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예수님(여호수아)은 히브리어로 구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 할 것이라고 성경은 교육한다.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로 그의 백성과 결부되어 있다. 백성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죄이다. 또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다. 모두가 성령을 잃어버려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 그의 마음으로 성령이 흐르지 않는다. 고인물이 섞듯이 인간의 마음,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성령이 흐르지 않아 썩고 있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린 결과이다.

죽어가는 노동자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가 사랑을 잃어버렸다. 생명의 양식도 잃어버렸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인류 모두를 위한 종교이다. 때문에 인류 모두가 성탄절을 기다리고,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정화된 마음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율법으로 주어졌다. 자유인은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예로 산 사람은 자유, 정의,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없다. 이들을 율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 오늘날 율법이 필요한 사람은 법과 제도를 만들고서도, 지키지 않는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 권력을 가진 군상들의 주변서 함께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자들이다.

윤리적·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교회의 헌금을 도둑질하는 교회지도자들에게 율법이 필요하다.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지 못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철저한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히브리인들도 파라오와 같이 힘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노예로 삼아 괴롭힐 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정화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자

때문에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내년 4월에 실시하는 총선에서 성숙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모두가 눈이 멀어, 귀가 어두워 성숙한 정치인, 교회지도자를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만 주장하며, 상대를 비난하기에 바쁜 정치인들 속에서 피곤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게 강제할 수 있는 율법이 필요하다. 모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말이 많은 사람은 인간사회를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권력을 가진 군상들 주변서 함께 권세를 누리겠다는 목사들만 보인다. 총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정치인들을 몰고 다니는 목회자들을 보면, 한국교회 앞날이 걱정스럽다.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정치적인 군상들에게 율법이 필요하다.

세계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그의 나라를 갈망하며, 그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힘을 내세우는 군상들에 의해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되고, 가진자들에 의해 불의와 거짓이 판치며,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렸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가진자나, 부자나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모두가 손과 발, 눈으로 범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함에도, 예수를 갈기갈기 찢는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끝없는 욕심쟁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 이를 버리지 않고서는 성령과 함께 할 수 없다. 분명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서에서 이탈한 사이비 목사이며, 사이비 교주이다. 이들이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 교회가 가야할 길에서 이탈한 군상들이다.

어느 교단은 총회장이 범죄하고, 총무가 해결사로 나서 교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분명한 것은 이들에 의해 한국교회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하나님의 질서,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모두가 위선적인 모습만 보여준다. 이런 상태로는 미래로 나갈 수가 없다.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위선적인 신앙과, 사회의 술과 환락으로는 기다리는 아기예수를 맞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주일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거지로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어떤 어린이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정성껏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밤새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호화로운 예수님은 오지 않고, 거지와 처량한 노인, 장애인만 왔다가 갔다.

예수님은 실망한 아이에게 나타나 “3번이나 너를 찾아 갔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는 전쟁으로 살해당하는 백성, 기아로 굶어죽는 이웃나라의 백성, 정결법과 안식일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 빈민, 장애인 등 힘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외면하면, 메시아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성탄의 계절 모두 마음을 가다듬고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려야 한다. 전쟁과 기아로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며, 이들과 함께 아기예수 탄생과 새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직접 통치 할 때, 억압과 착취, 불의와 거짓이 사라지고, 평등한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통치하는 세계는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때 그리스도는 힘없는 자들 속에서 우리를 부른다.

모두가 재물과 돈에 취해, 귀가 막혀, 눈이 멀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임마누엘은 로마 등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침략 앞에서 나온 희망의 메시지이다. 1천년동안 나라 잃고, 주변 강대국의 지배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 고난과 시련을 겪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마누엘은 현실로서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메시아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자

그리스도인 모두가 기다리는 아기 예수는 강대국, 아니 권세를 가진 자들에 의해 희생을 당하는 기층민중, 전쟁과 기아로 고난을 당하는 민족, 안식일법과 정결 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의 소식을 전해주는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전쟁으로 고난당하는 민족, 그리고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민족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자.

그리고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자. 그리하면 우리가 갈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 노력하는 교회들도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 교회의 재정 상당부분을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청소년들과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경찰관 등을 섬기는 분당횃불교회 이재희 목사를 보라. 자신이 가진 재물을 모두 내어 인도 빈민촌에 교회를 세우고 빈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며,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서사라 목사와 김보 선교사를 보라.

동자동 쪽방촌에 민족사랑교회를 세우고 곤궁하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일하는 임호성 목사를 보라. 마포 한 귀퉁이에 신생명나무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장헌일 목사를 보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외에서 병원선을 띄우고, 아프리카 빈민들의 교육사업 등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월드미션 프론티어 김평육 선교사를 보라. 필리핀 빈민가에 교회를 세우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김상호 목사를 보라.

이들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를 세웠다.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와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부른다. 망해가는 한국교회를 살려보겠다고 그레이스실천사역연구원 재정과 인적자원을 모두 투자해 지역복음화와 목회자들을 상대로 매월 정기세미나를 열고 있는 김록이 목사를 보라. 이들 중에는 사이비 이단연구가들에 의해 핍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나라운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들의 믿음과 신앙, 하나님을 향한 애정은 사이비 이단연구가보다 두껍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나라와 한국교회의 보배이다. 또한 이들 때문에 오늘 한국교회가 그런대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대형교회들이 힘없는 자와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돕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통 큰 사랑의 헌금을 내 놓는다.

이들 교회의 이웃사랑실천은 생색내기식에 불과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부자가 많은 헌금을 드리고, 예수님 앞에서 자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성경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힘없는 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바로 2023년 성탄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사가 아닌가.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밝은 귀로 예수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자.

그리고 1225일 성탄절 새벽 맑은 눈으로 예수님을 만나자. 신년새해에는 우리 모두 인류의 평화를 갈망하며,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 미래로 나가자.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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