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1971년 7월 26일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이 달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우주선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자그마한 공 같은 별이 하나 보였는데 지구였다. 축구공만한 별이 눈앞에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다. 그 별을 보는 순간 어윈의 마음속에 요한복음 3:16절이 생각나고, 그 말씀을 암송하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시여, 저 축구공만한 지구를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특별히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이 우주 안에는 있는 그 수십억 개의 별들 가운데 가장 작은 별 중의 하나인 저 지구별, 그리고 저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을 특별히 기억하시고, 사랑하셔서 자신이 사람이 되어 그 지구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셨다니, 저 지구가 어찌 그렇게 하나님의 눈에 아름답고, 위대하고, 크게 보인 것입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지구에서 생각하던 성경 말씀 하고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동이 올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본체가 하나이시니 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기에 탄생이라고 표현할 뿐 사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을 우리가 무슨 말로 설명을 하고, 우리가 어떤 지식을 동원하여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호적 하러 본적지 베들레헴에 온 요셉과 마리아는 빈 방을 애타게 찾았지만, 구할 길이 없었다. 아내가 배불렀고 언제 해산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던 요셉은 얼마나 빈 방이 있기를 원했겠는가. 하지만 빈 방이 없었다. 그래도 찬 이슬을 맞지 않기 위해서 찾아낸 곳이 기껏 마구간이었다. 갑자기 산기가 느껴지면서 애를 낳아야 되는 긴박한 순간이 왔다. 짐승의 먹이를 담아주던 구유를 털고, 적당히 깨끗이 한 다음, 거기에 몸에 걸치고, 어께 두른 천을 털어 깔고, 해산한 아이를 그 구유에 뉘었다. 그리고 요셉은 부랴부랴 옆집으로 달려가 물을 끓여 양동이에 담아 와서 아내를 수발하고 그 아이를 씻겼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태어나는 장면이고, 장소였을 것이다.

말과 양들이 배설한 오물들과 악취가 가득하고 거미줄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고, 쥐들이 들락거리는, 고약하고 어두침침한 그 마구간을 하나님께서 자기가 출생할 장소로 선택하셨다. 소를 키워 본 사람들은 마구간이 어떤 곳인지 잘 알 것이다. 물론 우리 한국의 소를 키우는 마구간과 유대 나라의 양마구간과는 만이 다를 수 있지만 고약한 냄새는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마구간은 더럽고 추악한 곳이다. 오만 가지 기생충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곳에 하나님이 태어나셨다.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안 되셨을까.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가 읽을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이기에 지극히 높으시고, 저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별들 가운데 거하시던 하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

천사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을 일컬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그 소식이 우리를 위하여 구주 즉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소식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에 의도하신 목적이 있었다. 당신의 사랑스런 파트너를 갖고 싶으셨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파트너를 가지고 싶어서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의도를 거절하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결과 인간은 허무한 실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영원히 저주 받은 실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문 밖에서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사랑으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의도하심대로 사람들을 바꾸어 거룩한 자로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보좌에서 일어나, 그 아름다운 어의를 벗어 던지고, 친히 베들레헴 말구유로 내려오신 것이다. 누구나 다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이 구주가 오셨으니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닌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설명 불가능한 신비의 날, 그 날에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구원의 소식으로,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받는 진정 성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할지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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