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이제 일 년을 마무리 할 시점에 와 있다. 범죄하는 발과 손을 끊고, 유혹하는 눈을 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원한의 관계를 청산하고, 사랑에 근거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성탄절 가장 낮고, 미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가야 한다.    

마태복음 6장14절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라고 기록되어 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에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용서에 대한 행복은 용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했다. 예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고, 감싸주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찌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어리석은 사랑이다. 어리석은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사랑이다.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사랑이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용서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랑 없는 용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성탄절아침 새로운 세상을 맞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야 한다. 잘못한 이가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어리석은 사랑, 계산되지 않은 사랑으로 용서해야 한다. 이때 비로서 진정한 용서가 현실로 다가온다. 용서한 자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야망이 있는 한 젊은 회사원이 자기 회사에서 수억 원의 공금을 빼돌려 달아날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이런 사실은 곧 적발되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냐는 사장의 질문에 젊은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받아야 할 법적 처벌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네를 용서하고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순간 젊은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물론입니다. 사장님,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사장은 다시 말했습니다. “좋네. 나는 자네에게 일말의 책임(責任)도 묻지 않겠네. 가서 일하게” 돌아서려는 젊은이에게 사장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참 한 가지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 갔다가 관대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야.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날세. 한 때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지… 그리고 자네가 받은 <용서>를 나도 받았다네.”

<용서>는 <용서>를 낳고 그 <용서>는 다시 <용서>를 낳고… 우리는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이달이 지나기 전에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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