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신년을 맞이할 때마다 교회나 사찰, 또한 산으로 바다로 발걸음이 분주하다. 평소 크게 관심이 없던 이들도 새해를 맞이할 때는 특별한 의미 속에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TV 등에서는 솟아오르는 태양을 행해 손바닥을 비벼대며 연신 허리를 굽혀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삶에 대한 절박함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게 애쓰는 것등에 대한 결과에는 보장, 약속됨이 없다. 따라서 “남들이 그러하다고 하더라”또는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자”는 생각에서 여행 길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이라면 그러한 일들에 동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저 맹목적인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름다운 풍속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신년을 맞이할 때나 평소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으로 기도하는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예배나 기도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한 약속이 함께 하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배나 기도가 열심히 손바닥을 비벼대며 허리를 굽혀대는 이들과 같은 생각에서라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물론 성도 간에 은혜를 구하거나 새롭게 시작되는 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와 결단 속에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일 수 있다. 거기에는 자기만을 위한 것도 있을 것이고, 타자적인 것도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간절함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자신과 자기가족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크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열매가 맺혀지기를 소망하는 간절함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은혜를 누리도록 하시지, 복만을 좇다가 지쳐 쓰러지고 넘어지고, 실족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섭리대로 이끌어가신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토마스 왓슨”이 말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글을 새겨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이 섭리는 그것이 그의 약속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믿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약속에 반하는 것처럼 전개되었다. 사울의 추격을 받은 다윗은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다윗의 의무였다. 하나님은 때때로 약속과는 반대되는 섭리를 통하여 약속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그와 함께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약속과는 정 반대되는 것처럼 보였다. 폭풍은 몰아치고, 배는 파선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배의 깨어진 조각들을 붙들고 그들은 안전하게 육지에 상륙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섭리가 분명하게 약속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출처 : 청교도 명언 사전)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의 언약대로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자 조롱, 멸시, 천대, 고난 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때 사도, 제자등은 실망과 좌절 비탄 속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의 평안을 물으셨고, 분부하시고,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요구된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 : 20 - 21)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