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안개에서 꽃을 떼어내니
안개만 남았다.

안개 속으로
누군가 떠나갔다
여백만 남았다

낮익은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면
뿌연 안개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안개 밖으로 나와서
더 또렷해질
내가 보일 것이다

-시집 『어쩌다 시간 여행』에서

박남희 시인: 경인일보 서울 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 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어쩌다 시간의 여행』 등. 저서  『존재와 거울의 시학』 등 현 《아포토스》 편집주간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작품 아래에 밝힌 동명의 인용 영화가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의 기법을 자주 사용한 특징을 말함으로 이 작품도 안개를 통해 사라지고 다가오는 것들 즉 존재 특징을 언질해 주고 있다.

안개는 안개꽃에서 상상한 것이다. 물론 여기는 언어유희를 통한 수사학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곧 안개꽃에서 꽃의 분위기 착상은 칼 라이트가 말한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 감각하는 통찰(insight) 인식을 보여준다. 이 말은 안개꽃을 과학적인 방법인 관찰(observation)이 아닌, 순간적인 착상 즉 통찰에 의한 기발성(conceit)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앎이 아닌 깨달음의 표현이다.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해석을 위해 착상한 객관상관물이 되는 사물인 안개꽃을 전제하면서, 안개의 본질을 통해 실존에 대한 진술을 밝히려 함이다.

안개는 항존성이 아니다. 사라져 없어졌다가 순간에 나타나는 특성을 봄으로 중간의 경계 곧 탈경계를 위한 존재의 인식을 드러내 보인. 인간도 영원성과 순간성을 가진 존재다. 전자는 종교와 철학적인 태도요 진술이다. 유신론적이거나 유심론적 견해인데 반해 후자는 유물적인 인식임을 지적할 수 있다.

안개꽃의 이름은 안개의 모습을 가진다. 그러나 꽃이란 단어가 삭제될 때 안개꽃이라는 얼굴의 얼(정신)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하면서. 얼의 상실 즉 본질의 상실을 의미하게 된다.  

물론 내용이야 독자마다 각양 다르게 해설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시의 특성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원된 레토릭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아무리 절대적 진리라 하더라도 시적 표현법이 아니면 그것은 산문일 뿐, 시가 되지 못한다. 이것을 충실하게 실현될 때 이 작품처럼 시로 완성되는 것이다. 언어유희로 시작하여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실존 담론을 깊이 보여주는 작품이라서 올려 본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