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당부

채송화 피면 채송화만큼
작은 키로 살자.
실바람 불면 실바람만큼
서로에게 붙어가자.
새벽이면 서로의 잎새에
안개이슬로 맺히자.
물보다 낮게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면서 흘러가자.
작아지므로 커지는 것을
꿈꾸지도 않고
낮아지므로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부끄럼을 안다는 건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사는 삶이지만 본의 아니게 잘못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반성이나 후회를 하는 게 양심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온갖 추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허물이나 죄를 덮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짐승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반성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할 때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다.

시인은 시의 첫머리에서“체송화 피면 채송화만큼/작은 키로 살자.”라며 안분의 자세를 당부한다. 자신에 대한 파악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을 부러워한다. 키가 너무 큰 사람은 좀더 작게 보이려고 굽이 낮은 신발을 신는다. 부자는 더 많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가난한 사람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는 좋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인은 주어진 환경이나 태생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도하거나 무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 대안으로 실바람 불면 실바람 만큼 서로에게 붙어서 가자고 하고 서로의 잎새에 안개이슬로 맺히자고 한다. 더 나아가“물보다 더 낮게 허리 굽히고/고개 숙이면서 흘러가자.”라고 하니 이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청유형으로 전개되던 시의 기조가 달라진다. 시인의“작은 당부”는 작아지면서 커지려는 꿈도 아니고 낮아지므로 높아지는 소망도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스며 있다. 잠잠히 시를 읽다가 보면 마음에 평온이 밀려온다. 시인의 바람대로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사람 사는 세상에 훈풍이 불 것이고 지상에는 작은 평화가 출렁이리라.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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