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헌 철 목사
서 헌 철 목사

어느 신부님이 강론 속에 나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그는 숟가락 몽둥이 하나밖에 없드라”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양복이고 무엇이고 늘어나니 고민입니다. 라고 말하여 장내의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물론 그 웃음은 모두가 흐뭇해하는 평안의 웃음이었으리라 생각하며, 필자 역시 그의 말에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그런데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였다.

87년 명동성당에 진입하려는 경찰관들을 몸으로 막아 학생들을 보호하며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야 학생들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한국의 민주주의에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한 분, 어렵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섰던 분이라는 말이 회자 되기도 했다. 또한 정직, 청렴, 나라 사랑, 민족 사랑, 나아가 북녘 동포 사랑 등 김 추기경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본받은 신앙인이라고들 했다. 물론 개혁교회 일각에서는 천주교를 총체적 이단이라고 말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의 삶에 사랑이 배어 나옴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개혁을 외치며 보수신앙을 파수해 나아간다면서도 독재정권에 기생하거나 아부하며 많은 이들이 억울한 고문, 죽음 등을 당해도 오히려 박수하거나 침묵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는 그가 인간다운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필자는 오래전에 ’강원용‘ 목사님에 대한 글이 2009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읽으며 큰 감동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킨 ’강원용‘ 목사님에 대한 애국심이 어린 학생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김수환‘ 추기경은 삶을 마감했음에도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천주교로 향하게 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목사인 맨발천사 ’최춘선‘ 목사님의 삶이 소개된 책과 CD를 접하면서 많은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교계 대형교회 목사들, 유명 인사들은 알앙도 ’최춘선‘ 목사님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므로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생각하며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기 전에 그들보다 개혁교회들 지도자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고 선포하면서도, 권력 싸움, 재산싸움, 교권 싸움, 성공 등의 자랑이 복음으로 포장되어 얼룩져있거나 또한 오직 자기를 위한 세상의 출세가 곧 복음 전도로 생각하는 일부 개혁을 외치는 교회지도자들에게 “우리 다시 한번 우리 모습을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너나 잘해라, 판단하지 말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을 기뻐하심을 되새기며 생동적 보수(生動的 保守), 화합적 일치(和合的 一致), 자애적 애린(自愛的 愛隣), 자주적 자립(自主的 自立), 순교적 봉사(殉敎的 奉仕) 신앙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한 기도를 하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

한국장로교신학 연구원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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