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의 악당을 들라면 시 36편 1-4절에 등장하는 악인이다. 시인은 악이 조성되는 두 신체 기관을 주목한다. 곧 마음으로 꾀하고 눈으로 무시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악은 동시에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1절). 그러니 지혜와 선행을 찾기 어렵고 되레 의기양양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심지어 잠들 때도 술수를 짜내고 악을 궁리한다(시 63:6).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기에 생기는 자만과 오만이다. 맹자의 수오지심(羞惡之心)에 대조된다. 시편의 빌런에게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새번역>

시편 1이 악인과 의인의 길을 대조한다면, 시편 36은 사람의 행악과 하나님의 인자를 대비시킨다(5-7절). 그러나 의인과 대등한 ‘주를 아는 자’와 ‘정직한 자’가 언급되어(10절) 결국 악인과 정직한 자의 길로 압축된다. 마침내 시인은 악인과 달리 주의 안전한 날개 아래 피하여 기름진 것을 먹고 에덴의 강물을 풍족히 마실 것이다. 악인은 하나님께 이르지 못할 뿐 아니라 넘어져 다시 일어날 수 없는 형벌을 받게 된다(11-12절; 시 1:4-6을 보라).

시의 초점이 악인에서 경건한 신앙인의 하나님 이해로 옮겨간다. 시인은 우선 하나님의 인자, 진실, 의, 공평 등의 전통적인 덕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넷은 다른 낱말이나 비슷한 뜻으로 서로 바꾸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동어반복을 피하며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인자’는 하늘을 덮고, ‘진실’은 구름에 다다르며, ‘의’는 하나님의 산들 같고, ‘공평’은 깊은 바다와 같다. 하나님의 네 가지 특성은 어떤 제한이나 경계가 없을 뿐 아니라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가치이자 목표다. 하나님을 아는 자와 정직한 이들에게 주어질 여러 혜택이 즐비하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머물고(7절), 기름진 것을 배불리 먹으며, ‘에덴의 강물’을 마시게 된다.

‘주의 복락의 강물’<개역개정>이나 ‘시냇가 단물’<공동>은 충분하지 않다. KJV의 ‘the river of thy pleasures’와 NRSV, NIV 등의 ‘the river of your delights’도 비슷하다. 사전적 의미만 살려놓은 것이다. ‘에덴’을 음역하면 생동감과 함축성이 확장된다. 굳이 ‘에덴의 강물’을 고집하는 이유다. 창세기 2장에 귀 기울이지 않더라도 에덴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며 상징성이 크다. 흔히 ‘에덴동산’이란 울타리를 두른(enclosed) 정원으로 외부 침입을 막고, 강물이 흘러서 경작이 용이하며 음용수 확보가 충분하고, 과실을 넉넉히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물 댄 동산’과(사 58:11; 렘 31:12; 아 4:12) 나중의 ‘과수원’ 등을 참조하라(아 4:13; 느 2:8; 전 2:5). 고대 히브리인들이 꿈꾸던 ‘에덴동산’에는 위의 모든 것이 투영되어 있다.

시인은 악인의 길을 멀리하며 경건한 신앙이 누릴 복을 8절에서 두 가지로 압축한다. 기름진 양식과 풍족한 식수다. 특히 주의 성전에서 베푸신 살진 음식과 야웨가 친히 예비하신 ‘에덴의 강물’이니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과 짐승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노래한다(5,7,10절). 이와 같이 하나님을 진실히 아는 경건한 신앙은 ‘에덴의 강물’을 마음껏 마시듯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야웨는 생명의 샘이자 빛이시라(9절).

‘에덴의 강물’은 예수가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한 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암시한다(요 4:14). 시인이 부른 에덴의 강물은 사막의 와디처럼 한시적이거나 예측할 수 없는 강물이 아니다. 언제든 마실 수 있으며 마르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온다. 시인은 에덴동산의 네 강을 연상하듯 하나님의 네 속성을 앞에 배치한다. 곧 인자, 진실, 의, 그리고 공평을 앞세워 시인에게 안전한 공간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풍족한 음식과 물 (주의 집의 살진 것, 에덴의 강물)을 제공하신다. 오만한 자와 악인들이 결코 이르지 못한다. 오직 주님을 아는 자와 정직한 자가 ‘에덴의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누릴 영원한 복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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