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민 교수
이 민 교수

중국 주()나라의 제후였던 문공(文公)이 태공망(太公望)에게 물었다. “군주가 훌륭하게 보이는 인재를 등용했는데도 정치가 어지럽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태공망이 답했다. “사람들의 소문만 듣고 등용하기 때문에 진짜로 우수한 인재가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왕이 다시 물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평판만 듣고 등용하게 되면 당연히 자기편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게 되며 자기편이 적은 사람은 불리해집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건 왜 그런가?” “못된 사람들은 작당해서 우수한 인물의 등용을 방해합니다. 정말로 훌륭한 인재는 갖은 방해와 비방으로 말살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못된 인물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가 어지러워집니다.”

비록 뛰어난 인재가 등용된다 해도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기 어렵다. 법치주의자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왕은 인재의 의견을 들으면 그것의 수용 여부를 먼저 측근에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측근이 반드시 현자(賢者)일 수는 없다. 우자(愚者)에게 그 인재의 평가를 맡겨버려 범인(凡人)으로 하여금 인재를 평가하게 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인재의 의견이 어리석은 자에 의해 좌우되고, 훌륭한 인물의 행위가 범인에 의해 평가된다면 정작 인재는 등용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서 정치가 혼탁해진다.

어느 나라나 단체에서 사람을 쓸 때 중요한 것은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쓰는 것이다. 닭에게는 새벽 시간을 알리게 하고 고양이에게는 쥐를 잡게 해야 한다. 완전무결한 인재는 없다. 사람은 쓰기 나름이다. 서툰 일꾼이 연장 탓만 한다.(A bad workman always blames his tools,) 조금의 결점이라도 있으면 나무를 버린다. 훌륭한 목수는 나무의 안 좋은 부분을 자르고 좋은 부분을 살려서 쓴다. 흠이 있든 없든 쓰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물론 군주 자신이 현명하지 않으면 좋은 인재를 분별할 수도 없고 훌륭한 조언도 쓸모없게 된다.

지금 열리고 있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의 교훈도 그렇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23일 새벽에 열린 호주와의 8강 맞대결에서 전반 42분 선제골을 내줬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51분 추가시간에 황희찬의 극적인 동점골로 기사회생했고, 연장 14분 손흥민의 프리킥 골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정규시간 90분을 넘어선 추가시간 득점이 이 대회 네 번째로 정신력의 승리라는 이면에는 전략전술의 부재, 적재적소의 선수 배치 실패의 비난을 받는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도 이렇거든 하물며 국가 지도자의 인재 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말을 부리는 최고의 기수는 말처럼 생각한다. 낚시꾼을 강태공으로 부르게 된 장본인인 태공망도 “10년 만에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했다.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려면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수험생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먼저 국민의 의도를 파악한다. 맹자가 말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바로 이것이다. 바보는 말하는 자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고 말에만 관심이 있다. 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낳는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를 버리고 낙향한 베드로가 스승과 재회한다. 숯불 옆에서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공교롭게도 숯불 옆의 스승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책망과 야단 대신 돌아온 스승의 첫 마디는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와서 조반을 먹으라였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베드로는 스승이 건네주는 떡과 생선을 먹으며 자책과 회한에 휩싸였을 것이다. 조반을 먹은 후 스승은 세 차례의 질문으로 사랑을 확인하며 추후 선교의 사명을 하달하고 순교의 운명을 예언한다. 비겁함과 불신으로 실패한 베드로가 용감한 복음의 용사로 새 출발한 것은 전적으로 베드로를 포용한 예수의 공감과 적재적소의 리더십 덕분이다.

목회자가 설교와 목회를 잘 하려면 교인들의 처지와 관심사를 파악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교인들이 일주일 내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고생하다가 예배당을 찾는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교인들이 땀 흘려서 번 돈의 일부를 헌금하는 정성도, 피 같은 시간을 바쳐 봉사하는 헌신도 기억해야 한다. 한경직 목사도 설교하기 위해 매주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였다.

권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authority의 어원은 ‘author’(창조자)이다. , ‘권위는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다. 그래서 긍정적 의미의 권위 있는‘authoritative’, 부정적 의미의 권위적인‘authoritarian’이라고 나누어 표현한다. 국민들과 교인들이 기피하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바로 권위 의식을 부리며(authoritarian) 권위가 없는(unauthoritative)’ 지도자이다.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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