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올라 간 높은 산(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베드로는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자신들은 그 장소가 너무 좋으니 내려가지 말자고 예수님께 말했다(17:1~4). 오늘 본문에서는 산 아래에 있던 나머지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꿇어 엎드려 간질로 고생하는 귀신 들린 자신의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려와서 낫게 하기를 구했으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고치지 못했다고 말하며 주님께 귀신들린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다(17:14~16, 9:14~22).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해 주셨다. 이 세상에도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영혼들이 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영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듯이 지금 교회들에게도 이러한 사랑과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참으로 선한 자, 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를 찾고 계시고 계속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심을 알기 바란다.

성경에 나오는 높은 산은 높은 믿음으로도 비유되지만 17장에 나오는 산은 축복의 산과 죄악과 문제, 교만의 산 등 두 가지 의미로 비유할 수 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의 영광을 보고 내려오기 싫어했다. 제자로서의 사명을 잊고 초막 셋을 짓고 살기를 원하며 영광스러운 축복의 산인 변화산에서 내려가지 말자고 말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독점하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기적인 베드로를 책망하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셨고 아픈 영혼을 치유해 주셨다. 예수님은 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의 제물로 오셨다. 구원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산을 옮기기 위해서는 축복의 산에서 내려와서 겸손히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된다. 생각을 높은 데 두며 허탄한 것을 좇지 말고 높은 데서 내려와 세상에서 겨자씨가 되어야 한다. 희생이 필요하다. 오늘날 많은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 직분자들은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 모든 생각이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교만에서 늘 내려오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다.

제자들은 간질환자를 고치지 못하고 서로 변론하고만 있었다. 서로 시시비비만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교회와 직분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간질환자를 고치심을 보고 제자들은 조용히 자신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는지 물어봤다.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적은 까닭이라고 답을 주시며 겨자씨 한 알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다(20). 겨자 씨만한 믿음일지라도 믿음은 사망을 이기고 악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게 한다. 믿음은 내 안에 말씀이 살아 있어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 하나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문제의 산을 옮길 수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오셨다. 아담 때문에 사망을 만들어버린 무덤 사건을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해독시키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신 이 놀라운 사건을 알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인내하며 날마다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바라보고 쫓아가는 믿음 또한 필요하다. 믿음의 형제들에게나 세상에 속한 영혼들을 향해 아가페 사랑을 마음껏 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우리는 제자로서 주님께 복음 전달자의 사명을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감당하여 주님이 오셨을 때 잘했다 칭찬받는 제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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