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곳곳에 갈등과 분열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지구별은 아름답다. 문을 열면 꽃과 나무들 그리고 새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이런 땅에 태어나서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마음 속으로는 사랑해야지 하다가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아름다움이나 사랑을 생각하기에는 세상살이가 참 팍팍하다. 한 끼를 걱정해야 하고 한 몸 누울 곳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시적 화자는 첫 연에서“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러하지 못했음을 토로한다. 오히려 남대신 자신을 더 사랑하고 말았음을 후회하고 있다. 사랑의 실천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는 성경 말씀처럼 그런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타적 삶의 실천은 나를 버리고 남을 섬기는 데서 출발한다. 참아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시기와 교만을 버리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품성이 전제가 된다.
다음 연에서“가난한 식사 앞에서/기도를 하고/밤이면 고요히/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허물투성이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 결과 어찌 되었는가. 순수한 꿈과 소망이“눈에 익은 별처럼”가슴에 박혀 버렸다.“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생애 내내 허둥거린다는 것이다. 시인의 탁월한 우주적 상상력의 발휘로 비현실적 상황이 가능한 현실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한다. 자신을 돌아보며 비망록을 쓴다는 것은 소중한 행위다. 사람과 동물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대목이다. 좋은 시 덕분에 형제의 눈에 티는 보고 자신의 눈 속 들보를 못 보는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를 읽을 때 사람다운 향기가 들린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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