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복음서에는 예수님 주변에 오랜 세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병으로 고통과 고난 속에 살아왔던 각색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바라보고 온 이들을 일일이 고쳐 주시면서 이 환우들이 몸이 아픈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성경에 병을 낫게 하여 주면서 거기에 따른 대가를 수수한 기록은 없다. 기록에는 당시 병에 고생하던 자가 병을 완쾌되었을 경우 반듯이 제사장에게 보여야 하며 보이러 갈 때는 예물을 가져가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복음서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할 때 갖가지의 은사를 행사할 권한 주시면서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고 하는 당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자들이 병 고치는 은사로 인해 병이 치료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금품을 수수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의사들의 파업 대란이 일어났다. 물론 저들이 생각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왜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 길거리로 나가 자신들 만의 권익을 외치는지는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고는 할지라도 대충 그들의 외침 속에 드러난 의중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의사는 보통 국민의 눈높이로는 상상도 못할 대우를 이미 받음과 동시 국민으로부터 두터운 신망과 존경을 받는 줄로 알고 있다. 또한 의사라는 면허를 국가로부터 면허받을 때는 그동안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인내하면서 이룬 것임도 알고 있다.

그런데 목숨이 위태하여 사경을 헤매는 중환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병원 서너 곳을 헤매다 결국 숨지는 사고는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비참한 사건이다. 이유인즉 응급실 전문의사가 부족해 위급 환자를 받지 못했다는 변명은 사경에 처한 환자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이해 불가다. 정말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유효한지도 의문이 든다. 의사는 단순히 직업인으로 의료기술을 팔아먹는 근로자라기 보다는 그 이전에 윤리와 도덕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병든 자에게 대가를 떠나 먼저 치료하여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 우선으로 생각함이 의사의 본분이라 생각한다. 의사들이 걸친 흰 가운은 바로 천사를 상징한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의사 증원 계획이 의사들의 수효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수를 늘리려는 정부에 항의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누렸던 파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사유를 국민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위기에 빠진 것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목숨이 위태로워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환자들을 볼모로 삼아 의료 대란을 일으킨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이제 파업에 동참한 만여 명에 가까운 의사들 가운데 종교인들이 상당히 있는 줄로 안다. 그 가운데 기독인들은 파업에 나서기 전에 한번은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기도하였는지 의문이다. 교회 주일 설교에서 수없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들었다. 그런데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한 것은 바로 세상은 사람들의 이윤추구의 각축장이며 생존경쟁의 현장이다. 사각의 정글과 같은 곳이다. 거기에 힘이 있고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곳이 정글의 법칙이다. 무수한 약한 짐승들이 강한 짐승의 먹이가 되는 곳이 정글이다. 이는 의사들이 강한 자인가 아니면 정부가 강한 자인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과 같이 강 대 강 즉 의사와 정부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즉 환자들만 등 터지는 결과다. 기독인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파업 의사 중 약 25% 가 기독교인 아닌가? 이럴 때 신앙의 빛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바로 국민이 원하는 의사가 아닌가?

기독교인 가운데 醫聖(의성)과 같은 분이 있었다. 장기려 박사라는 분은 의사의 직업을 가졌으나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고 가신 분이라 할 수 있다. 병원 수입    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여 입원 비가없는 가난한 환자를 배려해 한밤중 뒷문을 열어놓고 몰래 내보낸 분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의료 대란이 속히 진정되기를 위해 기도를 이끌어야 한다. 정부는 법의 칼, 의사들은 파업의 칼을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 입장의 칼을 갈다가 국민만 상처 입을까 염려다. 서로 다치지 않고 양쪽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이 살 수 있다. 한국교회는 국민의 고통과 환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볼모로 스스로의 권익만 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중한 때에 기독인 의사들은 솔로몬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가 한국 사회에서 길을 잃지 않게 말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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