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해서도, 분리할 수도 없다. 410일 제22대 총선에서 기독교정치세력화가 한국정치 70년의 역사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 20년 동안 5번에 걸쳐 기독교정당들이 출현,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하지만 분열과 정교분리의 벽에 부딪혀 매번 좌절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사정이 달라진 오늘 제22대 총선에서 유일하게 기독정당의 가치를 내건 자유통일당이 원내입성에 대한 희망을 걸고, 조직 강화와 세력규합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구약시대에도 예언자들이 나타나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한 이스라엘민족과 지도자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등 정치와 종교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신약시대에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군중을 선동한 죄,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임을 당했다. 제도화된 로마교회, 문화가 된 유럽교회 역시 정치와 교회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삶이 천상을 향한 삶이었다. 모든 삶이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다. 오늘날은 정치가 종교를 비롯한 문화, 경제, 스포츠 등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의 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말에 따라 정치와 종교가 철저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언자의 전통에서 벗어난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인 정치와 종교분리를 내세워, 잘못된 정권을 향해 쓴 소리를 내지 못해 왔고 못하고 있다. 오히려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세를 가진 자들과 함께 권세를 누리려고 했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 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이며,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정교분리원칙은 이제 고정관념이 되어버렸다. 이는 매 선거 때마다 시도한 기독교정치력화의 길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잘못된 정치와 사회제도를 향해 종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를 못했다. 이는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좌절시키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동성애, 차별금지 등으로 사회와 국가가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도 교인과 국민들로부터 종교인이 무슨 정치냐고 비난을 받기 일쑤다.

국민과 교인들의 이 같은 의식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제22대 총선서도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목소리다. 그럼에도 오늘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중심에 서 있는 자유통일당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강화, 복음통일 등의 이념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다 오늘 우리사회와 교회의 핫이슈인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 저출산, 이혼율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정교분리의 관념, 정치세력화 매번 좌절의 결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힘과 용기를
자유 통일
·민주주의·시장경제 등의 이념으로 창당
보수 기독교 정치인 대거 입당
, 총선 결과에 관심

멀고 험한 기독교정치세력화의 길

다음달 10일 실시하는 4.10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 왔다. 한국교회는 선거 때마다 기독교정당을 창당, 기독교정치세력화를 꾀했다. 하지만 기독정당의 국회입성은 멀고 험했다. 22대 총선에도 자유통일당이란 이름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에 도전한다. 5번에 걸쳐 좌절이란 아픔을 뼈저리게 통감한 한국교회는 자유통일당이란 이름 아래 또 다시 기독교정치세력화에 도전한다.

2004년 한국기독당는 1% 득표하는데 끝났다. 2012년도에 창당된 한국기독당 역시 0.17% 득표해 등록이 취소되었다. 김충립 목사를 중심으로 창당된 기독자유민주당도 기독사랑실천당과의 갈등으로 1%대 득표에 그치면서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 2004년도에 창당한 기독사랑실천당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강화, 복음자유통일 등 보수적인 개신교 정신을 기본 이념과 정강정책 아래 창당되었다.

기독사랑실천당과 기독자유민주당의 통합에 반대한 박두식 목사 세력의 주도로 기독당이 창당되면서, 국회입성이 또 한 번 좌절됐다. 하나 되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기독교정당에서도 그대로 노출됐다. 기독교 정당은 과거도, 현재도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등 극우 성향이 강하다. 북한과 접촉하고,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노래한 3명의 대통령을 좌파, 간첩으로 몰아붙인다. 이는 보수유권자를 하나로 결집하는데 한 몫을 한 것도 분명하다.

이렇게 20년 동안 5번에 걸쳐 선거 때마다 기독교 정당이 등장, 기독교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지만, 국회의원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면서, 그 벽이 두껍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 첫 번째 원인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정교분리원칙이다. 이 원칙은 관념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2004년부터 기독교정당은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 자살률 세계1, 저출산 세계1위 등을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행동하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전망 밝아

22대 총선은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과 맞물려 실시된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에서 새로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 기독교정치세력화도 그 중에 하나이다.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자유통일당은 한민동맹,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자유통일, 복음통일 등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전지역구에 후보를 낸다는 계획아래, 선거에 임하고 있다. 특히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인과 지식인, 젊은 청년들을 대거 받아드리는 등, 이번 총선은 그 어느 선거 때보다도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전망이 밝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고무되어 있다.

자유통일당은 4,10총선서 원내 진출은 물론, 교섭단체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이고 있다. 자유통일당 대표고문 전광훈 목사와 당대표인 장경동 목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우파와 기독교 세력 결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기독교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우파시민단체 결집과 혁명21당 등 군소우파정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성과를 냈다. 자유마을 1천만명 조직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국민대회를 개최, 자유우파 광화문세력의 결집을 이끌어 냈다.

매 집회마다 많은 지지자들이 몰려 왔고, 몰려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제22대 총선에서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전망이 한마디로 밝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도 제22대 총선서 자유통일당의 국회입성을 예견하고 있는 것도 기독교정치세력화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해 준다. 하지만 자유통일당의 정강정책을 지지자 모두가 표로 연결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과거 선거가 보여주었듯이 별개의 문제이다.

분명 기독교정당은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동성애 반대, 저출산 해결, 이슬람 반대, 자살문제 해결, 복음통일, 자유통일, 한미동맹 강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독교입국론 등을 일관되게 제기해 왔다. 이는 또한 자유통일당의 창당 목적이며, 이념이기도 하다. 특히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광화문세력이 우파애국세력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다 국민의 힘과 거리를 두면서, 극우세력, 기독교우파애국세력이 똘똘 뭉치는 모양새이다.

종교분리 선교사가 가져다가 준 산물

일제 잔재이며,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교분리원칙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 교인과 국민들에게 뿌리 깊게 내려, 이를 격파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정교분리정책은 일제가 항일투쟁에 적극적이었던 기독교세력을 교회의 틀에 묶어두기 위해서 만들어낸 정책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의 가장 큰 후원자이며, 우방이었던 대부분의 영미 선교사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하게 주창하고, 기독교인들의 정치참여를 철저하게 봉쇄한 것도 역사의 큰 오점을 남겨 놓았다.

한마디로 정교분리정책은 선교초기 선교사와 일제가 조선인, 특히 기독교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정책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당시 일부 선교사는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강제했으며,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교인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애급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음소리를 듣고, 해방시켜 주셨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당시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경이야 말로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조선의 백성, 일제의 억압과 탄압 속에서 신음하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기쁜소식, 복음이었다. 조선말과 일제하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민족운동과 항일운동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사실. 일제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참여하는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해서 정치와 종교분리정책을 시행했다.

일제는 이 정책을 한국주재 각 선교부에 하달, 이를 지키게 했다. 일제에 협조적이었던 영미선교사들 역시 한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몰각하고 이 정책을 개 교회에 하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의 선교사들은 3.1만세운동을 본국 선교부에 보고하는 등 고난당하는 한민족과 함께 했다. 오늘 목회자와 교인들이,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고 말하는 것은 예언자의 전통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선교초기부터 로마서 131-7절을 인용, “권력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일제에 부역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다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이들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결의,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에도 앞장섰다. 이 정교분리정책은 김종필이 철저하게 악용했다.

정교분리정책의 내용은 총독부는 조선인의 정치와 행정을 담당하고, 선교사들은 조선인의 교육과 사회사업을 담당한다는 것을 골자로 되어 있다. 당시 선교사들은 정교분리정책을 내세워 교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민족운동, 정치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당시 교회 내에서 민족의식 교육과 독립운동, 구약성서를 보는 교인들을 교회서 추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는 교회성장을 멈추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교분리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실천

한국교회는 분명 나라의 아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며, 행동했을 때, 크게 성장했다. 한국교회가 일본의 문화정책에 동화된 이후, 교회는 쇄락의 길에 들어섰고, 교회는 가야할 길에서 이탈, 지식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은 나라와 민족이 잘못된 길을 가면, 바로잡아 주는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 신학에 매몰돼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세력은 권력이 잘못 가면,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국민을 섬기며, 하나님을 섬기도록 목소리를 높여 왔다. 원외에서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세력을 불려왔다.

정교분리정책이 보수적인 한국교회 교인들과 국민들의 관념으로 작용해, 매번 기독교정치세력화의 발목을 잡아왔고 잡고 있다. 동성애법를 비롯한 차별금지법, 인권법 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크게 대두되면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16대 총선부터 기독당, 기독교사랑실천당, 기독자유당을 창당, 사회적 악법을 막는데 혁혁하게 공헌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전광훈 목사의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준곤 목사를 비롯한 조용기 목사 등 기독교지도자들이 기독교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기독당을 창당하게 되었다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보수적인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인권법 등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기독교정당을 창당케 했다, 기독교정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당선시켜 국회에 보내, 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장경동 목사 등이 중심에 있었다. 이 두 목사의 수고와 공로로 오늘 기독교정치세력화의 길이 20년 만에 매우 밝아졌다는 평가가 높다. 이 두 목사는 사랑실천당 등 기독교정당을 창당해 원내진출을 계속 시도했다. 가장 가능성이 컸던 지난 20대 총선은 기독당과 기독자유당으로 분열돼 또 한 번 국회 입성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기독자유당의 국회입성이 점쳐질 정도였다. 출구조사에서 기독자유당 2석이 예측되기도 했다. 410일 실시하는 재22대 총선이 달라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전 목사는 4년 전부터 자유마을 조직과 자유 우파 결집을 위해 노력해 왔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에 맞서면서, 우파세력 결집을 꾀했다. 기독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계속해서 입당하면서, 22대 총선은 과거의 선거와는 달리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혁명21당 등 우파 소수정당과의 통합

전광훈 목사는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위해 혁명21당을 비롯한 우파 소수정당과의 통합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우파 정치세력의 몸집을 크게 키웠다. 다음달 10일 전국서 실시하는 제22대 총선에서 원내진출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1천만 자유마을 조직과 광화문 세력의 몸집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거대 양당과의 차별화하고, 거리를 두면서 선거운동을 벌인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이 자유통일당 자체 분석이다.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은 우파세력의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보수적인 기독교애국세력의 기독교정치세력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22대 선거의 결과는 과거의 선거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총선을 앞두고 황보승희 의원을 비롯한 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정현미 교수, 이종혁 전의원, 유동규 전경기도시공사 사장, 전 챔피언 홍수환 장로, 장하나 목사 등 정치인과 지식인, 종교인, 젊은이들이 속속 입당하고 있는 것에 고무되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과거 구심점 없는 선거 때에 비교하면 매우 진보했다. 130개의 우파시민단체가 기독자유통일당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도 기독교정치세력화를 밝게 해 준다. 문제는 광화문세력과 자유마을 1천만명, 유권자 하나하나가 표로 연결되느냐(?)는 것이 관건이며, 한계이다. 4.10총선은 광화문세력과 보수적인 교회의 결집, 1천만 자유마을 등 조직면에서 과거와 다르게 매우 안정적이다.

동성애 반대 등 여론 확산에 기여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간의 갈등이 노골화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홉즈는 국가종교를, 존 로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다. 로크의 종교분리는 미국 캐롤라이나주 헌법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홉즈와 로크의 학설은 교회를 보호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홉즈는 교파 간의 갈등, 교회의 질서에서 이탈 할 때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존 로크는 교파간의 갈등으로 일어나는 제반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여기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교회는 정부가 요구할 때, 주민들은 신앙고백을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종교의 집회를 방해하거나, 종교 견해나, 예배방식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는 종교 활동에 일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광화문세력과 자유마을 1천만 조직은 과거 선거 때처럼 숨지 말고 전면에 나서 기도하고 행동하며 적극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투표장에 들어가서 사표를 방지하겠다며, 다른 정당을 선택하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일제의 잔재이며, 군사독재정권의 산물인 목회자가 무슨 정치냐등의 말로 기독교정치세력화를 무력화 시키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기존정당 안에 기독교인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포진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 현안에 대해서 대변하지를 못했다는 것에 서운함만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공감하면서도, 기독교인 국회의원, 후보들과의 이해관계에 얽혀 기독교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해 왔고, 일관하고 있다. 20년 전 젊은 목사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정치세력화는 원내 기독교인 국회의원 1백여명이 있지만, 이들이 교회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정당이 동성애 반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독교입국론 등 분명한 목적과 이념을 내세우고 출발한 만큼, 그 결과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월 고난과 부활이 교차하는 시기에 실시되는 제22대 총선은 불의한 정치권력과 싸우며, 하나님나라를 향해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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