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다. 기독교의 출발점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또한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고 증언함에 있다. 죽음과 부활을 믿고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의 생활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 하는데 있어야 하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그 초점을 두고 생활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행동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따르는 제자들에게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말씀을 통해 신앙의 출발점이 바로 십자가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기독교의 상징물인 십자가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냥 무의미한 교회를 상징하는 징표로만 남아 있는 모양이다. 기독교와 십자가는 탈색된 의미인 상징물에 불과하고 실제 십자가가 기독교인의 행동 강령이라는 생각은 할지 몰라도 생활 속에서 재현하는 일은 극히 드물어 애석하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 그리고 속죄를 위해 흘린 피로 물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안에는 그저 화석처럼 굳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사회 즉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는 말뿐이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체 그리고 특히 나라의 정치를 한다는 선량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점은 왜일까?    

만약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개개인 신앙의 정점에 이른다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소명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빛이 언제 비친다고 선포한 일이 있는가? 소금이 언제 지금부터 녹는다고 동서 사방에 광고한 일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향기처럼 날아 주변을 감화 감동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은혜로 빛처럼 스스로 비취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같이 소금처럼 스스로 녹아 주변이 거룩하고 의로운 생명의 맛을 맛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모습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영적으로 주어야 할 가치의 의미가 퇴색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눈은 선교 초기의 순수한 복음만을 위하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문제는 세월 속에 교회의 참모습을 잃어버린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성경에만 계시 된 것으로 만족하고 실제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퇴색되어 교회나 신자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읽을 수 없는 현실이 기독교의 정체성에 흠을 입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의 겉모습은 성경에 계시 된 신약교회의 이름만은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전도와 선교 목적을 수행하려 하여도 사회에 교회의 진면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은 교회만의 행사 위주로 끝이 나고 실제 신자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음이 큰 문제다. 아예 주일 교회에 가면 신앙인이 되고 교회에서 나오면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파송 나가는 것보다는 아예 신자라는 영적인 직분을 반납하고 나가지 않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즉 한 주간의 사회생활이 믿지 않은 자와 거의 비슷한 생활을 하지 않는지도 염려될 정도다. 그러기에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나타내기란 가히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서글픈 이야기다.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기독교가 신령 하려면 지금까지 눈감고 그러려니 하였던 교회의 중요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행사가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믿어지고 증언되도록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끼리 벌리는 잔치가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하며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교회를 사회에 개방해야 하고 높은 담을 낮추고 주차장을 공용하며 쉼터를 마련해 항시 누구든지 찾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이 어떤지? 예수님은 죄로 닫혔던 천국을 개방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 누구든지 들어 올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을 밖았으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닫혔던 천국 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계속 설치하여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교파의 장벽 교리의 장벽 성공의 장벽 건물의 장벽이 너무 높다, 부활절에 기독교회 문이 열었으면 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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