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시간

바람 친구 노닐다 간
외딴 산기슭 아래

낡은 토담집 한 채

사립문 가까이
우두커니 은입사 한 줄

은은하게 깃을 치는 고요의
쓸쓸한 황홀 너머

저 달빛, 휘영청…

온몸에
달그림자 하르르 ……

-시집 『몇 방울의 찬란』에서

* 문현미 시인 :
 『시와 시학』 등단. 백석대학교 교수(백석문화예술관장). 시집 『기다림은 얼굴이 없다』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 『몇 방울의 찬란』 등 다수. 박인환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서정성이 가득한 작품이다. 자아의 고독과 함께 달과 동행하는 화자의 상반성 정서를 제시하여 심미적 융합을 잘 보여준다.

시는 정답이 없다. 없어야 한다.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으로 숨겨서 노출시키는 수사학적 은폐작업을 은유라 하는 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외딴 산골의 낡은 토담집이라는 대상에 숨겨서, 새롭게 인식한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시인이고 독자의 일이다. 시인은 그러기를 바라서 은유를 동원했던 것이다. 새로운 해석으로 무방하다. 다만 개연성의 존재 여부다.

바람은 영원성의 결여다. 친구란 일상에서 겪는 일의 모든 총칭이다. 그런 삶에서 탈피한 화자는 낡은 토담집으로 자기 인식 동일시하고 있다. 즉 세월이 낡게 만든 토담집 같은 존재론적 현상, 현존재에 대한 고백이다.

은입사라는 사물을 동원한 것을 보면 시인은 허무하거나 염세적이지 않다. 은입사를 사전에서 보면 ‘상감기법의 일종으로, 홈을 파기 어려운 철제 기물의 표면을 정교한 끌로 곱고 미세한 거스러기를 낸 다음 얇은 은박판을 잘라 문양에 대고 두드림으로써 박판을 안착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라 한다.

인생도 숙련 기간이며 과정일 것이다. 은입사의 비유는 자기 경계를 보여주는, 사립문 안의 현존을 보여준다. 은입사 줄 하나가 화자의 삶 흔적이다. 고도의 기술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삶 속에 품은 예술성을 보여주려 함이다.

땅에 존재하는 화자는 하늘과도 함께 한다. 즉 신적 대상 중 하나인 달그림자가 바로 그것이다. 종교적 고백을 숨기고 있는데. 달빛 시간은 막연히 달빛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다. 하늘과 교류하는, 기도나 묵상 속 은혜의 시간이다.

이 작품은 고난도 수사학을 잘 보여준다. 종교용어 하나 없는 신앙고백, 그래서 더욱 절창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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