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 99는 제왕시의 하나다(시 29, 47, 93, 95-99). ‘야웨가 다스리신다,’ 또는 ‘야웨가 왕이시다’로 번역할 수 있는 야웨 말라크로 시작한다. 모빙켈은 대관식이 열리는 가을 신년 축제 때 불렸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시는 야웨의 통치를 제의 형식으로 구현한다. 시인은 통치자의 이미지를 빌어 왕으로 등극하는 야웨의 상징적인 행위와 제의적 종말론을 적절하게 녹아낸다. 제왕시를 통하여 왕위에 오르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장차 임할 야웨의 통치와 그 약속의 성취를 미리 맛본다. 포로기의 좌절과 실의에 빠진 가운데 이사야는 ‘복되고 좋은 소식’을 시온에 전한다(사 52: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새번역).
 
그의 메시지는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로 압축된다. 다음은 이사야보다 5세기 후 나사렛 예수의 첫 일성(一聲)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사실 예수의 선포는 예언자 이사야와 유대교 전통을 정확히 잇는다. 그 경로의 추적은 시편 99와 마가복음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동사 시제의 변화(괄호 속 영어 동사)에서 ‘통치하다’가 긴박하게 다가오는 종말론적인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복된 소식’에서 ‘복음’으로 정착되는 과정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외쳤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복되고 좋은 소식’이 예수의 선포에서는 곧바로 벌어질 것 같은 임박성 때문에 당장 결단해야할 말씀처럼 들린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이사야의 메시지가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전달되는 우편물이라면, ‘하나님 나라’로 압축된 예수의 선포는 신속하게 전할 전보(telegram)에 해당한다. 따라서 전보의 수신자는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움직여야 하는 긴박함을 감지한다. 이런 점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의 선언은 청중들에게 그 말씀을 듣는 즉시 결단하게 하는 과단성을 촉구한다.

시인은 왕의 덕목을 2절과 6절에서 세 낱말로 압축한다. 곧 정의, 공평, 그리고 공의다. 이 구절에서 낯선 대목이 ‘야곱’이다. 동일한 제왕시 99편에서는 야곱을 등장시켜 등극하는 왕의 덕목을 대조시킨다. 시인이 ‘야곱 ↔ 정의와 공의’라는 대립 항을 조성한 이유는 분명하다. 알려진 대로 야곱은 속이는 자를 뜻하는 동시에 그의 12 아들은 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뿌리가 되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속이는 자’ 야곱에게 공평과 정의와 공의는 꼭 필요한 사항이었다. 마침내 시온은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공의를 사랑하고 공평을 세우지 않았던가!

‘야웨가 다스리신다’는 메시지는 온 세상에 두루 미친다. 야웨 앞에서 모든 산과 온 땅이 왁스처럼 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5-6절). 지존하신 하나님이 좌정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떨고 땅이 요동한다. 왕이신 야웨의 무한한 능력과 통치를 암시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가 비롯될 때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의 마곡 전투, 곧 최후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믿었다(겔 38:2; 39:1). 이 종말론적인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떨며 엎드리게 될 것이다. 마침내 세상은 하나님을 경배하며(7절), 거룩한 이름에 감사한다(12절). 야웨 말라크!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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