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탈피(脫皮)란 파충류나 곤충류 등이 성장함에 따라 묵은 표피를 벗는 일을 말한다. 절지동물 또는 선형동물과 같이 딱딱한 큐티클(cuticle-각피)을 갖는 동물이 성장을 위해 예전의 큐티클을 한꺼번에 벗어버리는 것을 탈피라고 한다. 척추동물에서는 뱀이나 개구리의 피부 갱신과 조류의 털갈이가 탈피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곤충은 성충이 되면 그 이상 탈피를 계속하지 않으나, 좀과 같은 무시곤충(無翅昆蟲)이나 갑각류는 성충이 되어도 탈피가 계속된다. 곤충의 탈피에서는 세포분열에 의해 세포수를 증가시킨 표피세포층과 그 위에 있는 묵은 큐티클(cuticle)이 외골격과 먼저 분리되고, 표피세포층의 위에는 새로운 상(上)큐티쿨라층이 만들어진다. 묵은 큐티클의 안에 있는 원(原)큐티클은 소화 흡수되고, 대신에 새로운 상큐티클과 표피층과의 사이에 새로운 원큐티쿨라(cuticula-각피) 층이 만들어진다. 얼마 후에 묵은 상큐티클이 벗겨져 탈피가 완료되고, 동시에 새로운 표피가 늘어나서 충체(蟲體)는 커져 가는데, 이 탈피를 계속함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이후 새로운 큐티클은 다시 딱딱해져 유충을 보호하게 되는 일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반복되어 진다.

2014년도가 벌써 한 달을 훌쩍 보냈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은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남긴 말이다. 뱀의 껍질은 단단하고 질겨서 산과 들의 가시나 나무, 흙과 바위 등으로 부터 뱀의 몸을 보호한다. 그런 뱀은 자신의 껍질을 주기적으로 벗고, 새 껍질을 입는 일을 반복하므로 성장과 보호를 한다. 그런데 어떤 병에 걸리거나 해로운 먹이를 먹었거나 할 경우에 껍질을 스스로 벗지 못하는 병에 걸리게 되면 뱀은 굳어진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된다. 그래서 “껍질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이 격언이 된 것이다.

뱀은 자신의 껍질을 스스로 벗으면서(脫皮) 생명을 유지하고, 또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사람의 경우도 비슷하다. 뱀처럼 껍질을 벗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고정관념과 삶을 새롭게 바꾸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고정관념에 머물거나 갇혀 있으면 결국은 인생의 실패자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나라”고 하셨다. 껍질을 스스로 벗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는 뱀의 탈피(脫皮)와 통하는 바가 있다.
벌써 금년의 1월을 훌쩍 보내고, 2014년의 남은 11달을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한 해로 만들려면 내가 벗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며, 지키고 새로 취(取)할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새김질 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요즘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 역시 진즉에 벗어버려야 할 것들을 제때에 버리지 못하고, 고쳐야 할 것들을 제 때 고치지 못한데서 일어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 많이 아니라 내 인생 살이 속에서도 구조조정이란 말은 우리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말이 된다.

예레미야 4:3절의 말씀이다.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우리는 묵은 땅과 같은 옛 사람, 옛 습관, 옛 사고방식을 과감히 벗어나가야 한다. 마치 뱀이 자신의 껍질을 벗듯이 말이다.

지금 [한국교회연합]은 탈피(脫皮) 중이다. 두 후보가 격돌하여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과거 한기총의 선거 파행을 교훈 삼아 선거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유혹들을 물리치고, 돈으로 하지 않는 선거(選擧) 선전(善戰)을 하고 있다. 끝판에 후보들과 상관없어 보이는 일부언론들이 상당한 이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총대(總代)들은 달구어지지 않는 양상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기면 기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마구잡이로 하는 음해성(陰害性) 발언이나 행동의 네거티브(negative) 현상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양 후보가 탈피(脫皮)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양 후보들이 접전을 벌였고, 선전(善戰)하였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후의 후보자들의 승복하는 태도가 부럽다 못해 아름답게 보였다. 이기고 짐에 대한 승복(承服)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도 우리 한교연(韓敎聯)의 양 후보들에게 그런 아름다움을 만신창이가 된 한국교회에 선물해주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의왕중앙교회.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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