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 록이

                         김 소 엽

  아직 첫 돌이 지나지 않는
  그 녀석의 눈은
  청잣빛 맑은 가을 하늘이다

  그 하늘에는 하나님이 살고 계신다

  손녀딸이 보고 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

 
===================

우선 손녀딸이라는 말이나 딸을 그 녀석이라고 부르는 말에서 시적 분위기와 뉘앙스가 감각적으로 피부 깊이 스며든다. 손녀라고 해도 될 것을 딸이라는 여성을 지시하는 말을 덧붙여 손녀가 아닌 가장 가까운 피붙이로써의 다정다감의 관계임을 강조하려 함이다. 녀석이라는 말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말을 단독으로 사용할 때는 보통 남자 애들에게 사용한다. 그러나 이 작품처럼 손녀에게 사용할 때 이미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관계를 통해 애정의 관계로 인지하는 내적 의식을 나타내려 함이다.
 화자는 자신의 자손을 통해 역설적 시각으로 자기 창조주를 보는 것이다. 손녀딸은 자기 핏줄을 통한 피조물이지만 오히려 창조주를 확인하는 반전의 착상을 통해 현대시의 특성 중 하나인 기상(conceit)를 이루어 내고 있다. 

시를 전개하는 단계도 아주 기발하다. 손녀의 눈동자가 청잣빛이라 함은 서양의 피를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화자의 상상을 통한 순수를 의미의 하늘색으로 이해하더라도 무방하다. 하늘이 지시하는 의미를 담으려 하는 사전 작업이다.

하늘 색깔은 아직 첫 생일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라는 것과 그 안에 내주하는 신적 창조에 대한 감탄을 보여주려 하는 의도에서 동원된 시어다. 이것이 곧 융합시학에서 말하는 양극화 작업이다. 이 작음(小)과 큼(大)을 통합적으로 인식하여 미적 융합을 이루는 감수성을 통한 감각인식은 그 양극화의 거리가 먼만큼 미학적 울림현상도 커지게 된다. 이 울림을 감명이라 하고 현대자유시의 내재율이라는 리듬을 형성하는 것이다. 

융합시의 특징은 미세함에서 거대한 우주를 보는 시인의 의도적인 미학적 작업에서 저절로 감탄하게 되는 특징의 면을 가진다. 사전 양극화 시킨 작업은 미학적 기전을 통해 핵융합과 같은 거대한 심미적 에너지를 방출하게 한다. 좋은 시란 모두 그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