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교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차이, 거리가 얼마나 될까? 하늘과 땅 사이라는 엄청난 거리는 다분히 은유법적인 표현이다. 서로 거주하는 공간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식의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을 비교하자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람과 달팽이와의 차이를 놓고서 비교해 보자. 둘 다 동물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고, 필연적인 생명유지의 조건들이 있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달팽이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조건을 넘어서 사람과의 교류, 사람과의 소통은 전혀 불가능하다. 이것을 우리는 ‘존재론적 차별성’(ontological difference) 이라고 부른다. 비록 비슷하게 보이는 유사한 존재적 특징을 가졌다 하더라도, 확연히 구별되는 두 존재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람의 존재와의 차이점은 각각 질적인 성품을 통해서 드러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시이요, 장소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며, 영원하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1항). 하나님께서는 어떤 움직임이나 변화에도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사람은 이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질적인 차등, 곧 거리감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완전하게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짐작조차도 할 수 없다.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인간은 유한하고, 제한적이며, 임시적이다. 인간은 수시로 변덕이 심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준으로 낮춰주셔서 찾아오시지 않으시면, 전혀 알 수 없으며, 언약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간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자신을 알려 주셨다. 아담과 이브를 지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만드시고, 언약의 관계를 설정해 놓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먼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시작하였다. 사람은 이 관계에서 순종과 복종의 의무를 지니게 된다. 하나님을 알만한 계시를 모든 피조물 속에 넣으시고, 선포하신 말씀 속에 넣어서 알리셨다.

2. 위로부터 나온 지혜

기독교는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보여주신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믿는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낮추셔서 사람의 수준으로 열어 보이시는 계시를 통해서 알려 주셨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들로 목양이나 리더쉽을 논하려 하지 말라. 사람에게서 나온 것들은 악한 생각이요 악한 야심일 뿐이며 욕망과 정욕적 인 것들이요 육체적인 타락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것들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보여주셨으니, 첫째는 자연만물이요 둘째는 사람의 양심이며 셋째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전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활용하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져버리게 되자, 특별한 방법들을 동원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신현이요, 둘째는 기적이며 셋째는 예언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초자연적으로 비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 특별계시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이 성경에 담겨져 있다. 특별계시의 최종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침이 성경의 골자이며 핵심이다. 성경은 하늘로부터 나오는 초월적인 지혜를 전해준다.

참된 지혜는 세상에서 나온 지식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지는 사람을 바른 길로 안내하여 주며, 인간이 가진 힘과 능력에 대해서 감사하게 하고, 한계와 제한성을 깨우쳐 준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지혜로부터 인류가 처해있는 가장 적나라한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성경은 오직 위로부터만 지혜가 온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성경은 높은 곳에서 사람을 들여다본다. 인간들은 스스로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람은 어두움에 묻혀 있다. 언제 죽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고린도전서 1:19-21; 25절 말씀을 기억하자.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성경에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 즉 사람의 구원에 대한 지혜와 지식과 진리가 담겨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신다.”고 말씀한다(잠언 2:6).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세계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다음은 잠언 30장 2-4절에 나오는 아굴의 고백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아멘)

아굴은 지혜의 본질을 추구하다가 낙심하여 무척 초췌한 지경에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처절하게 지혜를 추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현자, 책사, 군사, 학자, 대사, 선사, 선비, 박사, 도인, 도사, 명사, 랍비, 선생, 사부, 철학자 등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있지만, 그 누구도 인생의 신비와 본질을 다 풀어내질 못했다. 사람이 처한 현실은 이처럼 암담하고 어둡고 무섭다.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단절되어서 철저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지혜는 초월하신 하나님으로서 나온다. 사람에게서는 참된 지혜가 나올 수 없다. 잠언 30장 5절에,“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하셨다. 피난처이자 보호처가 된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말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해서 지혜를 예배해 놓으셨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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