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다윗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자신의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로 여호와께 물었다. 다윗은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삼상 30:6) 다윗이 기도로 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용기를 주셨다. 이것이 다윗이 성공에 이를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적(政敵) 이스라엘 왕 사울은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 왔을 때에 두려움에 휩싸여 떨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무당을 찾아가 묻고 나가 전투에 임하는 대조를 이룬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윗은 언제나, 생활 속에서 그리고 최악의 위기를 만났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응답으로 길을 헤쳐 나갔으나 사울은 그렇지 못했다. 다윗이 양 치는 목동에서 일어나 왕이 되었듯이 사울은 소치는 소년에서 일어나 왕이 된 사람이다. 사울은 다윗보다 인간적인 매력을 더 많이 가진 인물이기도 했으나 사울이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할 성격적인 약점으로 위기를 맞으면 오히려 당당해지는 다윗에 반하여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려 인간적으로 일을 그르치는 한계를 가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과 맞섰을 때다. 블레셋 군대는 스넴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 군은 길보아에 진 쳤으나 병력과 사기에 있어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군을 압도하였다. 이에 기가 꺾인 사울은 마음이 통째로 흔들렸다. 이 정황을 사무엘상 28장 5절은 “블레셋 진영을 본 사울은 몹시 겁에 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가 겁에 질렸다면 이 전쟁은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때 사울이 이성을 잃고, 해결책을 찾은 것이 무당을 찾아가서 어찌할까를 묻는 것이었다.(삼상 28:7) 예견했듯이 그날의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은 대패하고, 사울 왕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전사했다.

사울의 전사소식을 들은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물어 처사(處事)를 결정한다. 이 점이 사울과 다윗의 차이다. 다윗의 일생 중 가장 치명적인 범죄는 충신 우리야장군의 아내 밧세바의 미모에 빠져 그녀를 가까이 하였다가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군인으로써 전장에 출정 중인데 후방의 아내가 임신을 하였으니, 낭패스런 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윗은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장군 우리야를 불러들여 까닭 없는 여러 가지로 회유하지만 충신 우리야는 다윗의 간계에 걸려들지 않는다. 다윗은 우리야장군을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보내어 고의로 전사하게 한다. 다윗 왕은 이 일이 완전범죄인줄로 알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이 사실에 대하여 과감하게 추궁하며 다윗을 책망한다. 사무엘하 12:9에서 나단이 다윗 왕을 꾸짖는 장면이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야를 죽이되 암몬 사람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나단 선지자의 노도(怒濤) 같은 책망에 직면한 다윗 왕은 왕으로서의 권위나 체통에 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엎드려 자신의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한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삼하 12:13) 다윗의 즉각적이고도 진실한 회개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다윗을 용서하신다.

성경은 우리들이 죄를 짓는 것을 나무라고 책망하시지만 그 보다 더 엄하게 책망하는 것은 지은 죄를 회개치 않는 것이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진실 되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회개를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신다. 다윗의 죄에 대한 이 태도와 마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여기셨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행 2:25) 다윗이 온갖 시련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의 마음이 흔들림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장차, 언젠가 오실 메시야를 눈앞에 모시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이 복잡하고, 난해하며, 흔들림이 몹시 심하다. 이런 때에 다윗처럼 우리 앞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요동함이 없는 삶의 비결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비결일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국제신한대학원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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