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기독교인의 신앙과 타 종교인의 신앙의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다. 죽음은 죽음을 만드신 하나님의 죽음이요 부활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부활이다.

하나님이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인간의 죄를 다스리는 방법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죄를 위해 죽으셔야 했고, 부활은 죄로 죽었던 인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를 사함 받은 후 본래 하나님과 방불한 영생을 회복해 주신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신의 죽음과 부활이 타 종교와의 구별이다. 하나님은 거룩히 구별된 몸 된 교회를 통해 찬양을 원하신다.

기독교에 귀의 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공통으로 죄로 인한 죽음을 세례(침례)로 죄를 용서 받아 부활의 체험을 통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을 전파해 지구상의 모든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그런데 작금 기독교의 행태는 죽음과 부활의 진리는 내던져 버리고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목욕 후에 진구렁에 다시 눕는 것과 같은 세속으로 되돌아가 사욕에 빠진 모습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일 년에 한번 돌아오는 부활절 행사를 놓고 연합조직 운영자들의  이전투구는 과연 이들 조직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기독교의 연합 조직들은 대게 개 교회를 성공 시킨 목회자들이 주축을 이루어 운영한다. 헌데 목회자들의 모임이 대화와 타협 그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참여해 모임의 취지를 살려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부활신앙과 배치된 모습이다.

이제부터 한국교회는 모든 분야에 거듭난 모습인 부활을 드러내는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담임 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애쓰고 노력 했다면, 지금부터는 그러한 교회가 연합할 수 있게 목회자들은 담임한 교회의 세력과 교단의 배경, 개인의 넘치는 자격을 앞세워 연합 조직이 형성에 해악을 끼치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종의 정신을 함양하기 바란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일연의 사건들은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들이 교회의 체면과 교단의 이권을 위해 문둥이 제자리 뜯기씩 이전투구는 볼썽사나우니 가급적 서로간의 비판과 약점을 광고하는 행위는 중단하였으면 한다. 

한국교회는 개 교회별로는 크게 성장해 세계가 부러워할 교세를 가졌다고 본다. 그런데 그 성장은 이웃에 있는 작은 교회들에게는 벽과 같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신성한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인가? 성장한 교회에서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를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실제 그렇지 못한 실정을 어떻게 이야기 해 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성경은 나눔에 대하여 수도 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상은 넉넉한 교회와 부족한 교회와 유무상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눔의 생명 나눔이다. 부활신앙의 결실은 나눔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영원한 생명을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곧 생명 나눔이다. 생명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그런데 교회는 생명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긴다. 내 교회만 살면, 내교회만 크면, 내 교회만 넉넉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바로 동정심과 긍휼이 죽은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다. 이 죽음은 희생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생명이 죽은 상태라는 의미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살길은 죽은 모습을 희생의 모습으로 바꾼 후에 서로 나눔으로 부활을 찬양해야 한다.

부활절을 기해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신앙인들에게 실제 부활신앙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주일에는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지만, 일주일동안 세상 생활에서 부활신앙을 가진 거듭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실제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거듭난 신앙이 나타나야 하는데도 그러한 사람들이 눈에 띠지 않는다. 즉 일요신자는 많은데 생활 속의 신앙인이 없다는 증거다. 해결을 위해선 먼저 지도자 목회자들이 부활신앙을 회복한 후 성도들의 거듭남을 드러내게 함이 참된 길이 아닐까?

특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인 정치현장 속에서 신앙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거듭난 기독인이 필요한데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 비굴해 지는 정치인들 가운데 기독인들이 상당수라고 하는데, 바라기는 부활 신앙을 생명 같이 여기는 기독인 정치인이 나서기를 기대한다. 몇 달 후면 선거철이다. 후보에 나선 기독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인격을 접고 권모술수를 쓰거나 상대를 중상 모략하는 비겁한 정치는 청산하고 거듭난 부활신앙을 앞세우기를 기대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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