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에 내려가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 때 요셉은 자신을 팔아버린 이복형제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분을 품고 살면서 탈출만 하면 복수하리라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나서 요셉이 복수를 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성경은 요셉이 이 말을 듣고 울었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왜 울었을까요. 요셉이 그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곡물을 사러 온 형제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당신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내가 기르리이다.” 요셉은 선으로 악을 갚은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인 이스라엘을 통한 섭리의 역사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치셨고 주님이 그러하셨고 주님을 믿고 하나님 가까이 섬긴 사람들이 그랬다면 우리도 그렇게 따라서 해야만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에 대하여서 까지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배워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보상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언제나 믿음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 믿음이 어떻게 역사하는 가를 모르면 그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항아리에 담겨진 씨앗과 같은 상태로 그대로 있습니다. 믿음이 어떻게 역사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에는 믿음의 시간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제대로 역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시간 개념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나 주위에서 "나는 주님이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나는 하나님이 길을 내실 것을 알아."등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말할 때 그들 스스로는 믿음의 말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믿음의 시간 개념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에는 시간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은 언제나 현재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믿음이 현재가 아니라고, 믿음이 지금이 아니라면 그것은 지금 역사하지도 않는 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지금 현장에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에서와 같이 인간(나)의 모든 죄와 고통과 질병도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것을 현재에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역사가 일어나는 믿음인 것입니다.  

주은혜교회 담임·감리교중앙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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