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현란한
설움 모두
토해낸
애잔한 백치白痴
발끝 쳐들어 살포시, 하이얀 윤무輪舞
벙어리춤

벙어리
눈꽃되어
꽃되어 천상으로 날고 있다.

▲ 정 재 영 장로
시의 본질은 결국 변용이다. 변용이란 얼굴 바꾸기란 말이다. 다름 말로는 모습꾸미기다. 이말은 내용을 드러내는 표현을 단순한 화장이 아니라 완전히 모습을 바꾸어 놓은 변장과 같은 것이다. 원래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바꾸어 놓은 모습일수록 미학적으로 효과적이다. 

 시란 내용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전혀 다른 말로 바꾸어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렇게 a만들면 한참 생각한 후 원래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을 기상(conceit)이라고 한다. 이것은 직관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이해는 직관이라는 통찰력으로 본심(원관념)을 이해하여야 한다. 시는 시적 대상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존재로 만들기에 전혀 다른 의미의 성격을 가지게도 된다. 

 이 작품은 눈(雪) 내리는 모습을 벙어리 춤으로 변장해놓았다. 눈은 벙어리고 눈이 내리는 모습은 무용과 같다는 것이다. 즉 침묵으로 말하는 간절한 춤이다. 

 이곳 무용수는 백치이며 벙어리다. 백치란 순수를 극대화시킨 말이며, 눈의 하얀 색을 연상시킨 ‘하이얀 윤무’에서 그 속뜻을 찾을 수 있다. 윤무란 집단 무용이다. 화자도 그 일원으로 사물을 동일화시킨 기법을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눈은 위에서 내리는 하향 관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발끝을 쳐들어’ ‘천상으로 날고’라는 말을 보면 상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눈의 움직임은 곧 시인의 마음이다. 이 말은 눈을 빌어 하늘로 올리는 기원(祈願)의 모습으로 변용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숨겨서 보여주는 기법이 시의 미학적 창출 기전이다. 

 순수를 극대화 한 백치의 모습으로 변용한 자신의 설움을 하늘로 올라가는 눈으로 변장시켜 만든 형상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즉 시란 말로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 안에 나오는 눈의 설움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독자가 각각 심상에 중첩시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언뜻 보면 어렵지만 대신 친절하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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