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인간이 만든 종교들

인류 문명과 문화의 4대 발상지라 하여 전통과 문화와 문자들의 발상지를 찾아보면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들이 각 문명사회를 형성해 내려가는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4대문명의 발상지와 그 뿌리를 형성하는 종교들을 분석해 보자.

이집트 문명, 그리스 헬레니즘, 황하문명과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등이 지금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 고대 인류문명의 발상지들과 그 영향을 입은 주변 지역에다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문화, 그 위대한 성취로부터 지속적으로 평안과 감격과 행복이 주어지고 있는가? 나는 문명의 발상지들을 다 방문하고 난 후에, 그 허상을 깨닫게 되었다.

나일강 상류, 거대한 물줄기의 발원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에 세워진 돌 신상 아부심벨 신전이 세워져있다. 람세스 왕과 아내를 두 번 겹쳐서 세워놓은 엄청난 석상 앞에서 일 개인은 그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돌 신상이 나일강의 범람을 막아주거나 외적의 침입에서 나라를 지켜준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근처의 모래벌판에는 불가사의한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이 놀라운 무덤들 역시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그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하 돌을 모래사막에 옮겨다가 세워놓았을까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하지만 놀라운 마음을 잠시 접어놓고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된다. 이런 돌무덤에서 과연 무엇이 나오는가? 현대 이집트는 그 어떤 자부심도, 문명적인 창조력도, 종교적인 경건함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고대 사회의 유산들에게서 아무런 행복과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이집트 사람들은 결코 아부심벨 신전과 피라미드로부터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해답이 찾지 못하고 있다. 방화와 대립으로 정권을 빼앗으려는 이집트인들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거대한 돌무덤 앞에서 초라하게 망가진 후손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아름다운 산들과 맑고 깨끗한 바다가 어우러진 그리스, 아테네 언덕 높은 곳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파르테논 신전에 희랍의 신화가 아로새겨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들의 주인공들을 위해 거대한 전각을 지어서 섬겨왔지만, 여기서도 역시 현대 그리스인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리스 헬라 신화 속에서 펼쳐진 행복과 사랑과 즐거움이 과연 그 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경건한 생활의 지침을 주었던가? 누가 어디에서 어떤 기쁨을 얻었던가? 그저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 끝없이 이야기로 전달되는 공허한 것들 뿐이다.

헬레니즘으로 일컬어지는 신화와 철학이 아테네에서 나왔지만, 지금 그리스는 역대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혼란에 빠져있다. 어느 정치가도 방책을 내놓지 못한 채, 국가 경제의 파산과 무능력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신음하고 있다. 국가 부도라는 소용돌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무능력한 국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올림푸스 신전들에 얽힌 교훈과 역사는 온데 간 데 없고, 그리스 국민들은 지금 절망 가운데 놓여있다.

황금으로 지어진 모슬렘 사원이 예루살렘 성전 터 위에 높이 지어져 있다. 엘 악사 모스크, 그 앞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모슬렘 교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중동국가 어느 모스크에나 하루에 다섯 번씩 올리는 기도자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기도 혹은 탄원들이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누가 어떤 응답을 받았는가? 모슬렘의 가치와 코란의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과연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인류의 동동한 대우와 인격적인 성숙에 있어서 모하메드의 사상이 위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파괴적이고 전투적이며 극단적인 살상행위를 정당화하는 테러리스트들이 양산되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황하가 대지를 품어서 번성한 중국에는 수 천년의 왕조 역사와 유교적 통치학과 불교 고찰들이 무수하게 흩어져 있다. 한자문화로 집성된 도교와 유교의 정신을 발산해 낸 나라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이 거대한 나라로 발전하는 근거가 과연 유교에서 나왔는가 아니면 불교에서 나왔는가? 지금의 중국이 어느 문명을 근거로 세우졌느냐고 물으면, 민족주의적 공산주의가 빚어냈다고 말할 것인가? 모택동 사상으로 잘살게 되었는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에 의해서 오늘의 시장경제가 들어와서 잘먹고 잘살게 되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인의 지혜로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수 천년 된다는 불교사찰에서는 무엇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 과연 사천성 3천 미터 드높은 곳 높은 바위 위에 신비롭게 세워진 아미산 보국사에 가면 사람의 문제를 풀어주는 해답을 찾을 수는 있을까? 힘들게 그 높은 봉우리에 세워져서 감탄을 금할 수 없지만, 그 높은 경지에 오른 후에 무엇을 얻었다는 확실한 진리는 없다.

고승들마저도 학식보다는 기도하고 수행에 힘쓰라고 말한다지만, 어떤 길이 과언 진리에 도달하는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없다. 오랜 세월동안 수도에 정진했다는 학승이나 고승이나 대사들이 많았지만, 각각 끝을 모르는 방황과 혼돈과 몸부림에 그쳤을 뿐이다. 수행의 방법들도 제각각이요, 해답도 역시 혼란스럽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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