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복잡한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해답이 과연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현대인들의 갈등과 압박을 받는 심리를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각 나라로 퍼진 불교는 각각 수행의 방법이 다르고, 지향하는 세계가 모호하다. 불교 교훈이라는 것들은 전혀 일관된 체계가 없다.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 남긴 말을 가지고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지금까지 불교의 고승이나 수행자나 대사라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 수행의 길이라고 한다면,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도달하라는 것인가. 깊은 산속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면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극히 소수의 행복이 아닌가! 결국 빈 마음을 가지라는 불교의 수행과 참선과 공양이라는 것들이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극히 적은 위안에 불과하다.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이 없다. 그저 약간의 성찰과 반성을 하게 해 주는 가르침인지라, 심리적인 일부분에 그치는 것이요, 결국 거짓된 지혜에 불과하다.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더라도, 그 어떤 문명이나 어떤 철학이나 어떤 인간의 사상에서도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란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한계와 제한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가능한데, 그 어디에서도 철저하게 인간의 악함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사상체계란 없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갖가지 종교와 사상과 철학의 속임수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분별력을 가지면 거짓됨과 모순을 간파해 낼 수 있다.

거짓에 물든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탁월한 학자의 이론이라도 허점이 있으며,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사람의 인격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반갑고 절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몇 달간을 함께 지내면서 같이 공간에서 부딪히게 되면 어딘가 불편해지고 만다. 결국은 서로에 대해서 실망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부부로 함께 살아가는 사이라 해도, 각자 자기 중심으로 결정할 것을 요구하기에, 결혼 생활에서 항상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는 욕망과 욕심과 야심의 냄새가 풍겨난다. 그 어느 누구를 만나도 처절한 실패와 후회와 대립적인 긴장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든지, 지금 살아있는 전 세계 어느 도시에든지, 행복한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서 싸워나가는 허기진 군상들만 넘쳐난다. 결국, 사람에게서는 순수하고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 고상한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

복잡한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해답이 과연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현대인들의 갈등과 압박을 받는 심리를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각 나라로 퍼진 불교는 각각 수행의 방법이 다르고, 지향하는 세계가 모호하다. 불교 교훈이라는 것들은 전혀 일관된 체계가 없다.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 남긴 말을 가지고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지금까지 불교의 고승이나 수행자나 대사라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 수행의 길이라고 한다면,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도달하라는 것인가. 깊은 산속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면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극히 소수의 행복이 아닌가! 결국 빈 마음을 가지라는 불교의 수행과 참선과 공양이라는 것들이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극히 적은 위안에 불과하다.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이 없다. 그저 약간의 성찰과 반성을 하게 해 주는 가르침인지라, 심리적인 일부분에 그치는 것이요, 결국 거짓된 지혜에 불과하다.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더라도, 그 어떤 문명이나 어떤 철학이나 어떤 인간의 사상에서도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란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한계와 제한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가능한데, 그 어디에서도 철저하게 인간의 악함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사상체계란 없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갖가지 종교와 사상과 철학의 속임수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분별력을 가지면 거짓됨과 모순을 간파해 낼 수 있다.

거짓에 물든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탁월한 학자의 이론이라도 허점이 있으며,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사람의 인격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반갑고 절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몇 달간을 함께 지내면서 같이 공간에서 부딪히게 되면 어딘가 불편해지고 만다. 결국은 서로에 대해서 실망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부부로 함께 살아가는 사이라 해도, 각자 자기 중심으로 결정할 것을 요구하기에, 결혼 생활에서 항상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는 욕망과 욕심과 야심의 냄새가 풍겨난다. 그 어느 누구를 만나도 처절한 실패와 후회와 대립적인 긴장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든지, 지금 살아있는 전 세계 어느 도시에든지, 행복한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서 싸워나가는 허기진 군상들만 넘쳐난다. 결국, 사람에게서는 순수하고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 고상한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

3. 사람의 제한성

사람은 많은 능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갖고 있다. 먼저,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것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육체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때가 되면 영양을 섭취해서 힘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잠을 자야만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예외가 없다. 사람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도 예외없이 의식주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육체적인 생리현상에서는 갖가지 욕구가 나온다. 탐욕과 과욕이 사람의 욕망을 부채질해서 허욕에 빠지게 한다. 물질적인 욕심, 성적 쾌락에 대한 집착, 갖가지 욕망에 빠져들고 만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명예욕과 권력의 욕구를 채우고자 허망한 줄을 모른다. 육신의 온갖 질병들이 과도한 욕심 때문에 혹사하고 노심초사하는 데에 원인이 있음을 알면서도 결코 억제하거나 포기할 줄을 모든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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