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피는 봄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 밤 손꼽다 기다리던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 정 재 영 장로
제목 ‘봄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꿈을 현실로 그려내는 시각화 작업이다. 

 그 꿈은 절기처럼 저절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연 네 번 째 행처럼 ‘언덕 너머에 있어’ 자신이 가야 만날 수 있는 절기이기도 하다. 

  ‘임종 때’라는 말에 의탁하여 생각하면 이월이란 종말론적 절기이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의 때로 볼 수 있는 이중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눈바람이 매운’이라는 말에서 고난의 절기로 읽어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전자로 해석한다면 봄꿈은 사후세계인 천국을 말함이요. 후자로 읽는다면 고난 후 다가오는 축복의 때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도 종교적인 ‘하느님’이라는 언어에서 종말론적 담론으로 읽어야 본의에 가까운 해석이 된다. 이처럼 담은 의미가 함축적이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는 작품일수록 좋은 시다. 

 시작 부분의  ‘만약에’ 라는 말은 가정법을 이용해 꿈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마지막 행을 보면 그 의도가 확연해진다. 봄이란 기다려야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전에도 피안의 것이 아닌, 곧 다가오는,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때 꿈은 몽상(dream)이 아닌 본질적인 이상(vision)이며, 실제적인 환상(fantasy)다. 사후세계는 사는 동안은 꿈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꿈을 현실적인 봄으로 치환하여 비가시적인 세계에 현실감을 가지게 한다.

 이월이라는 겨울이 오히려 행복했었다는 말은 인생이란 천국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겨울 나그네와 같다는 것이다. 인생은 봄을 기다림에서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죽음이란 봄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생의 마지막은 언제나 겨울 끝인 이월이다.

 이처럼 봄에 연결된 겨울 끝 이월은 서로 상반된 절기다 이 둘을 융합함으로 천국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기법이 바로 융합시론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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