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갈릴리에 돌아오셔서 가버나움과 나사렛 등에서의 초기사역을 누가복음 4장에서 만날 수가 있다. 가버나움을 거쳐 나사렛 회당에서의 배척과 낭떠러지로 밀어 내려하는 고향사람들, 다시 가버나움회당에서 귀신들을 내쫓으시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는 등, 쉬지 않고 일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이 자기들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류한다. 여기서 '만류하다'는 헬라어는 매우 강한 어조로서 ‘꽉 붙잡다, 차지하다'는 의미로 예수님을 붙잡는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완강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이 독점하려는 강한 이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음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독점의식이 예수님의 사명을 고려할 수 없기도 했다. 때문에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하시고, 그곳을 떠나신다. 우리는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마11:23. 24)를 통해 예수님을 독점하려는 자들은 영적으로 양질의 신앙인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같이 잘못된 독점욕은 기독교 역사에 종종 나타난다. 교회가 성령 충만할 때는 언제나 구원의 기쁨을 전하려는 열망이 넘쳐 났지만 교회가 사명을 잃고 병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예수께서 온 세상의 구세주임을 망각하고, 자기들만의 하나님인줄로 착각하여 자기들끼리만 즐기다가 교회가 죽은 시체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 큰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오래(?) 목회자로 살다보니 때로는 자신이 목회자인 것을 잊고, 생활인 되어 있는 나를 자각하고는 등골이 오싹한 때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처럼 경건이 습관이 되어 경건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종교인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주님과 깊은 관계가 경건이고, 신실함인 것을 잊고, 자칫 가슴이 냉랭하게 식은 채로 교직노동자가 되어 교회에 나가고, 예배를 드리고, 인도하고, 교회안의 사람들만 보느라 예수님과 예수님 없이 죽어가는 자들이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는 화석 같은 내가 되어버렸다.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奇事)를 보고, 체험하고도 예수님의 사명과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예수님을 붙잡아 두려했던 사람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버나움 사람들의 만류를 일언지하에 뿌리치고,천국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마음을 가졌는가를 고민한다.

우리가 구원받은 예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나 한사람 구원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천국비유를 통해서 잔치에 손님을 청할 때 사거리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데려 오라고 하신다(마 22:9,10).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들어와 예배하는 자들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이 만족을 주지 못한다. 산과 들로 다니시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애쓰신다. 자기 자녀를 아시기에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남아있는 이상 예배하는 우리만으로는 만족하실 수 없다. 이 같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우리끼리만 좋아한다면 교회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흩어지지 않으려는 교회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지상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그들을 흩어 온 족속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데 있다. 교회가 흩어지기를 주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며, 만약 우리가 주저한다면 예루살렘교회처럼 극약처방을 통해 우리를 흩으실 지도 모른다(행8:1. 4).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열방에 선교사를 보내어 선교하기를 열심히 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고, 한 줄기의 소망스런 빛이다. 이것은 복음을 세상에 뿌리기 위해 우리 민족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가 분발하여 열방을 위해 흩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다. 나와 우리교회가 혹시 가버나움 사람은 아닌가? 아니라면 행동으로 보일 때다. 눅 4:43-44절의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신 동시에 나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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