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질적인 차등, 곧 거리감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완전하게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짐작조차도 할 수 없다.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인간은 유한하고, 제한적이며, 임시적이다. 인간은 수시로 변덕이 심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준으로 낮춰주셔서 찾아오시지 않으시면, 전혀 알 수 없으며, 언약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간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 자신을 알려 주셨다. 아담과 이브를 지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만드시고, 언약의 관계를 설정해 놓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먼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시작하였다. 사람은 이 관계에서 순종과 복종의 의무를 지니게 된다. 하나님을 알만한 계시를 모든 피조물 속에 넣으시고, 선포하신 말씀 속에 넣어서 알리셨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하나님의 겸손과 낮춰주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케 하셨다.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번영을 주셨다.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8절을 보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언약관계를 맺은 백성들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설명을 하였다. 예수님께서 출애굽기 3장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 하였도다 하시니라” (막 12:25-27, 눅 12:37).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성한 남자만 60만 명이었으니, 가족들을 다 합하면 약 2백만 명을 넘어서 약 3백여 만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고된 노동과 억압 속에서 신음하며 부르짖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고자 내려오신 것이다. 창세가 3장 8절, “하나님이 내려오사”라는 표현은 비유적이요, 은유적인 단어이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항상 어느 곳에나 계시고, 어디에서나 임재하신다. 그러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려 오셨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매우 통찰력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먼저 주도적으로 움직이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선적으로, 능동적으로, 주권적으로 행동하신다. 그 이전에도 그러하셨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신비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일정하시고, 한결같으시다. 그렇지 못한 인간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먼저 낮아져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입고 오시는 것은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 오셔서 말씀하시고, 교제를 하였다. 창세기 3장 8-9절에서 범죄하고 숨어서 하나님을 피하려는 인간에게 찾아오셨다.

17세기 영국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장 1항에는 낮춰주심과 언약은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진다고 보았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비록 이성적인 피조물들일지라도 마땅히 하나님을 그들의 창조주로 순종할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의무수행의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무슨 축복이나 상급을 얻어 낼 수가 없 었고, 오직 하나님 편에서 자원적으로 자기를 낮추심에 의해서만 그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언약의 방법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사 40:13-17; 욥9:32,33; 삼상2:25; 시113:5,6; 100:2,3; 욥22:2,3; 35:7,8; 눅 17:10; 행17:24,25).

하나님의 겸손과 낮춰주심,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언약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서 먼저 “자발적으로” 겸손해지셨다 (voluntary condescension).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여 오직 정죄를 당해야 마땅한 자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성을 맺으려고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시기 때문에 피조물 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아무런 죄를 범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에게 찾아오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 주어졌고, 아담이 순종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아담과 낮아지셔서 상호 소통을 하셨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아담은 창조주에 대해서 관련을 가진 존재로서 책임을 져야만 했었다.

피조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는 몰랐다고 하거나, 핑계할 수 없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언약은 이미 맺어져 있으며, 영원토록 이 관계성은 유지된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해야하고, 의무적으로 지켜야할 것이 있다. 인간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다르게 구성되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대한 관련성과 방식은 바꿔진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지속하셨다. 진노와 심판으로, 다시 은혜로 타락한 인관과의 관계를 맺으셨다. 그 관련성, 교제의 목표는 죄에 빠진 자들 가운데서 일부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속사역에 관련되어 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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