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돌아보면 주변이 온통 사랑 타령이다. 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는 핵심 주제이다.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가 불행하다. 다투다가 화해하고, 성냈다가 기뻐한다. 도대체 이 사랑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가? 사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오는 것일까? 새해 벽두 동네 어귀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쳐다본 군상들의 얼굴에는 너나할 것 없이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니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아내로부터 딸들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제자들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의 부족함 때문에 서러움에 배여 있음을 보았다.

홍수가 나면 넘쳐나는 것이 물이지만 정작 제일 귀한 것이 식수라고 했던가? 엄청나게 많은 물들로 고통을 받지만, 정작 가장 귀하고, 구하기 힘든 것이 식수라는 이 역설은 마치 사랑이라는 홍수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의 갈망을 채워줄 진정한 사랑은 없다는 현실을 잘 설명해 준다. 그토록 사랑을 갈구하지만 진정으로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 없고, 설령 있다하여 그 사랑을 받고 받아도 부족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런데 그 절망의 끝을 잡고 떠오르는 한 가지 섬광같은 가르침이 있다. 사랑은 받은 데서 풍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줌으로써 풍족해진다는 사실. 아! 그 말이 왜 이제야 이처럼 가슴 저리게 소한(小寒)의 칼끝 추위의 매서움으로 파고들며 나를 돌아보게 하는가?

로버트 폴검의「내가 배워야 할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에서 “인생의 지혜는 대학원이라는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주일학교의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는 말을 절실히 되새기게 되는 새해벽두이다. 사랑받기 전에 사랑하면 그 사랑이 충일하게 너의 가슴을 채울 것이다. 이 행복의 기쁨은 어려서부터 배우고 듣고 본 것들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라도 어머니가 주신 사랑에 내가 즐거워할 때, 그녀는 가장 행복해 했었다. 나의 사랑하는 여인이 성큼 나의 청운을 받아주었을 때, 그녀의 얼굴에서 번져가는 행복의 미소를 보았다. 아비의 생일에 아비의 손을 잡고 컴퓨터 대리점으로 끌고 가서 아비가 원하는 것을 선물로 사주고는 그렇게 행복해 하는 딸의 얼굴에서 충만한 사랑의 흔적을 보았다.

사랑을 베풂이 진정한 사랑을 가슴에 채우는 지름길이었다. 알고 있었고,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행동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새해 햇살에 비추어본 내 실상은 너무도 초라한 ‘사랑하기 성적표’였다. 정말 창피하고 속상하다. 굳이 변명하자면 난 성자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다. 정말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받으면 행복하다. 누구라도 나를 사랑해주면 난 그 사람이 좋다. 정말로 그 사람이 좋다. 이런 변명에도 불구하고 유치한 모험심으로 거꾸로 사랑을 베풀어 보면, 그로인해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내가 더 행복해졌다. 정말 그랬다. 그래서 올해는 그 유치한 모험심을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바꾸어 보려고 한다.

분명히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 많은 날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들을 사랑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책을 찾아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인터넷에 물어볼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섬광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내 눈길을 주자!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존경을 담아 그를 바라보자. 또 내 말을 주자!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가득 담아 용기를 주자. 그리고 허락한다면 내 가슴으로 포근히 안아 줄 것이다. 그리고 심장 박동을 모르스 부호로 삼아 “사랑합니다!”‘라고 전해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넘치는 사랑의 홍수를 모두 식수로 삼아 누구보다 속 시원한 을미년이 될 것이다. “사랑합니다.!!”

전 그리스도대학교 총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