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일복지재단 ‘다일작은천국’의 대표 방모목사의 ‘음주난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방목사의 음주난동은 일반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방목사가 목사, 아니 성직자이기 때문에 도마 위에 올라 국민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목사가 일반 국민과 달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행동을 저질렀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데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주목해야 한다.

사실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담임목사 세습을 비롯하여 윤리적인 타락,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 유용,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서면서, 국민적 비판을 받아 왔다. 여기에다 언론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한국교회 목사들의 범죄행위를 앞을 다투어 보도하며, 한국교회 목사들의 탐욕을 비판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목사들의 잘못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해당교회의 목사는 교인들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는 등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또한 한국교회의 목사 대부분은 목사와 교인들의 치부가 언론을 통해 드러날 때마다 교회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도, 이를 덮기에 급급했다. 한마디로 목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면서, 선교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번 방목사의 ‘음주난동’은, 한국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언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뉴스소재이며,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할 목사, 아니 성직자가 세상 사람보다 더한 욕설과 폭언, 여성을 향한 폄훼발언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방목사는 노숙인 시설인 다일복지재단 산하 임종을 맞는 분들을 위한 ‘다일작은천국’의 대표이기 때문에 ‘음주난동’ 보도는 국민적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선한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는 것이다. 방목사의 모습은 이중적인 가면을 쓴 한국교회 일부목사의 형태라는데 이의가 없다.

목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종이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모범을 보이고,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존경할 만한 목사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교회성장을 이룬 일부목사는 교회의 후임자를 결정하면서, 아들목사, 아니 사위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해 교회분열의 불씨를 남겼는가 하면, 이를 둘러싼 논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맘몬에 길들여진 일부목사는 교인들의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분수에 맞지 않은 교회당을 건축, 세인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교회는 건축비를 갚지 못해 교회당을,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에 팔아넘기고 있다. 많은 교회가 이단단체에 넘어갔으며, 담임목사들은 “부동산컨설팅 회사에 맡겨 교회당을 팔았기 때문에, 이단에 넘어가는 줄 몰랐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목사는 교인들을 살필 의무가 있으며, 영적인지도자로서 교인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지도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일부목사는 성직자로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탐욕에 길들여진 나머지 맘몬교회당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교인들의 경제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또 목사는 화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일부목사는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데 그 중심에 있었으며, 보혁 갈등을 부추기며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것은 오늘 한국교회의 목사가 중재자로서, 화해자로서의 하나님나라 선교를 충실히 감당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한편 목사는 성서에 나타난 간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에 충실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일부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맘몬을 숭배한 나머지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사들은 2014년 한해를 뒤돌아보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전혀 닦아주지를 못했다. 오히려 이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해 슬픔을 더해 주었다.    

목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서 화해자, 아니 중재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또한 성직자이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난당하는 이웃과 분단극복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목사가 세인과 달라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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