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든 부부든 간에 만나는 기간이 오래되고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성격차이로 인한 트러블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말이 안 통한다고 답답해하고 상대를 비난한다. 말이 안 통하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도무지 지구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만 같은 서로를 가리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남녀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아 불화가 생갈 때 흔히 주위에서 해주는 조언이라곤 대화를 많이 하라는 것뿐이다. 사이가 안 좋을수록 더 많이 더 자주 대화를 해서 상대 입장을 들어보고 내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라는 취지이다.

이 말은 일면 맞는 말 같다. 근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대화가 부족해서 사이가 벌어진 걸까? 대화는 하는데 도통 말이 안 통한다. 서로가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나마 어느 한쪽에서 받아들이면 다행인데 서로 간에 도무지 상대의 말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뿐이니 이해해 줄 수 없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점점 떨어져 30%대로 추락했다. 경제 활성화에 기대를 걸었던 중산층에 이어 최근에는 세금 문제로 직장인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대통령부터 불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오랫동안 반목의 정치로 불려 질만큼 상대에 대해 절대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과거 민족의 역사 속에 서린 한(恨)을 상대에게 푸는 한풀이 정치라는 말도 나온다. 야당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하지만 여당도 야당시절엔 똑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후 여당 대표를 비롯해 여러 부처의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들이 잇따라 기독교연합회관을 방문했다. 이들은 한교연 한기총 등 연합기관 대표들에게 신년 인사차 들른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시점이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라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대통령과 국민사이의 소통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었다고 한다.

한교연 양병희 대표회장은 정용섭 행자부 장관에게 경기장에서 선수와 감독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 관중석에서는 더 잘 보이기도 한다며 현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대통령과 국민간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나 이후 중요한 이야기는 비공개로 진행해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 알 수 없다. 소통을 명분으로 종교기관을 순방한 정부 여당의 대표가 스스로 불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대통령이 위대하고 정치인이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국민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정치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이 없으면 사공이 필요 없듯이 정치인은 국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집권 초기에 유독 소통을 강조해 온 박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왜 불통을 넘어 먹통 얘기까지 나오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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