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3일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논란이 여전하지만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청렴한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을 뗀 셈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부패인식지수에서는 OECD 34개국 중 27위로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의 부패국가로 낙인찍혀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회가 여야 합의로 공직사회의 외과적 수술을 위해 칼을 빼든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김영란법은 정부가 법안을 넘긴지 1년7개월 만에 늑장 처리됐다. 밀고 당기는 긴 논의 과정에서 공직부패 척결이라는 당초 목표는 상당히 희석되었다. 국회의원만 교묘하게 빠져나갈 조항을 끼워 넣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여야가 막판 협상에서 적용 대상인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것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배우자가 아닌 자식과 형제를 통해 뇌물을 수수하면 마땅히 처벌하기 어려워졌다. 법 적용대상 범위를 줄이는 데 급급하다 결과적으로 법안의 구멍만 키워놓은 셈이 됐다. 그래서 벌써부터 졸속 입법이란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민간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대상에 포함한 것은 공직부패 차단이 목적인 김영란법 취지에 어긋난다. 반부패 입국을 위한 대국적 차원에서 수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민간 영역의 자율성 침해로 위헌 논란을 키운 것은 결코 공감하기 어렵다.

적용 예외의 일부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금품'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그렇다. 검찰과 경찰이 정치적 독립성의 측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의 정치적 남용이나 자의적 적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검경의 표적수사에 악용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 행위를 처벌 대상 청탁에서 빼고 시행 시점을 1년6개월 후로 잡은 것은 이기적 담합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법이 통과되자 기독교계에서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이다. 벌써부터 목회자들이 선교비조로 받는 봉투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있을 거라는 말도 들린다. 종교인 과세 등에 대해 강력 반대해 온 만큼 목회자가 법률상의 공직자는 아닐지라도 정서상 양심에 켕기는 일을 하다보면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앞날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법안이 만들어진 지 2년6개월동안이나 정무위 차원의 논의로만 방치하다 최근 며칠 새 허겁지겁 조문을 완성해 본회의 표결을 거치다 보니 벌써부터 이구동성으로 보완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행에 들어가기도 전에 위헌심판이 청구될 수도 있고 국회에서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 ‘잉크도 마르기 전’인데 말이다.

김영란법의 통과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아닌 민심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입법 취지를 희석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이 법이 비록 법률이 정한 공직자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의, 본이 되어야 할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볼 때 오랫동안 ‘인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관행으로 굳어져 온 봉투돌리기에 무감각해 져 버린 기독교계가 특히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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