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다고
산을 내려오지 마라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열고 오라

산길이 열리면
무거운 짐 내려놓고
굴곡의 길 가지 말고
곧은 길 따라
어둡기 전에 내려오라

더 오를 길 없거든
그리움이 소진消盡되긴 전에
꽃 한 송이 들고 내려오라

▲ 정 재 영 장로
산이나 길은 철학적인 담론이나 종교적인 분야에서 잘 사용하는 상징어다. 산 오르는 길은 어떤 특수한 목적을 가진 행위의 길이다. 그 말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해 있다. 

 산에는 사원이 많고, 종교적인 행위가 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호렙산, 갈멜산, 감람산 등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첫 연에서 ‘길이 없’는 산은 사람들이 아직 다닌 일이 없는 길이다. 그 길은 화자가 처음 도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2연에서 보면 그 길을 만들 책임이나 의무도 있다. 어떤 중요한 목적지점에 다다르는 길이란 자신은 물론 남을 위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3연을 보면 그 산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다시 내려와야 하는 곳이다. 그곳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와야 하는 장소다. 

 내려오는 행위도 ‘어둡기 전’이다. 어둡다는 것은 종말론적 시기를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 ‘더 오를 길이 없’다 함은 최정상의 위치에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진리의 정상이기도 하고, 깨달음이나 추구했던 목적이 이루어진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상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는 3연의 내용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꽃 한 송이’는 미학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다. 그런 가치의 단순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원래 정상은 하나의 꼭짓점이다. 그 꼭짓점은 형태적으로 단순하나, 가장 종합적인 것이다. 이 꽃 한 송이 같은 산정이라는 점을 위해 산은 저변이 넓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함이란 그 길을 오르는 과정을 모두 거쳐야 다다를 수 있는, 길고도 힘든 과정임을 숨겨 말하고 있다. 동시에 산과 사람의 협력 통해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함축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시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동원하는 상징어의 힘을 알게 해준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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