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기독교의 최대 축일이다. 그런데 정작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부활절이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부활의 모양만 있을 뿐 고난의 과정에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고난의 묵상과 실천 속에서 찬란한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지만 고난없이 오직 부활의 영광만을 소망하는 것이 문제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고난이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고 고난은 복음의 방식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고난 없는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다. 초대교회사에서 스데반의 고난과 순교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세계선교도 없었을 것이다. 이 땅에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도 없다. 십자가는 영광이 아니라 멸시 받는 것이며 우리는 그걸 받으며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올해 부활절연합예배가 사상 유례없이 3개로 분열된 것이 그 증거이다. 서로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한다지만 이는 변명아닌 말장난에 불과하다. 서로 자기에게 들어와서 하나가 되자고 하고 자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것이 정통이고 남이 하는 건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자가당착 논리 속에 엄청난 분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논란의 이슈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선교 초창기에 ‘을’의 처지에 있었던 교회가 이제 덩치를 키워 ‘갑’의 위치에 서게 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19대 국회의원의 종교 분포도를 보면 기독교가 전체에 50%를 넘는다.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각계각층의 영향력 있는 직급 3만1천800명에 대한 종교를 조사한 ‘대한민국 파워엘리트’에 의하면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압도적이다.

한국교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사회에서 어느 새 ‘갑’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자연히 그 책임을 무겁게 져야하는 위치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올바른 갑의 역할에서 벗어나 소위 ‘갑질한다’는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활절 전 고난주간은 갑의 자리에서 을의 자리로 내려오라는 주님의 명령이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외식을 질타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숨길 수 없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안과 밖을 똑같이 하라고 주문하셨다. 성전 안에서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들과는 달리 친히 어린 양으로 희생하셨다. 갑을관계로 얼룩진 오늘날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의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예수님이 그대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한국교회의 큰 위기를 △성장의 멈춤, △재정 위기 및 초대형 교회의 부도, △초고령화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위기를 외면한다면 2028년경 본격적으로 침몰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년이 한국교회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절망 끝에 희망이 있다. 위기는 항상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오히려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졌듯이 한국교회는 낮아질 때에 오히려 부흥이 시작될 것이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갑의 자리에서 위세를 떨쳤던 중세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필연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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